애덤 피오리 지음, 유강은 옮김/미지북스·1만8000원 1982년 미국 청년 휴 허는 겨울철 암벽 등반 중 조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동상에 걸린 두 다리의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단순한 의족과 재활훈련은 사라진 다리를 대신하진 못했다. 불편함을 극복하려 로봇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는 직접 고안한 바이오닉 다리로 거듭났다. 각종 모터와 동작 감지 시스템, 유도미사일에 쓰이는 관성 측정 기술, 뇌의 운동피질 전기신호를 다리 동력에 전달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오늘날 인간은 과학기술과 정밀공학, 최신 의학이 접목된 생체공학 덕분에 자신의 신체를 복구하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의 프리랜서 기자 애덤 피오리의 <신체 설계자>는 ‘생체공학이 열어젖힌 매혹적인 비밀의 문’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지은이는 다리 근육이나 손가락이 잘렸다가 재생된 사람, 귀로 ‘보는’ 시각장애인,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마비된 뒤 텔레파시로 소통하려는 환자들, 인간의 몸을 재건하는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신체가 재생되고 기능을 되찾는 과정과 과학적 원리를 생생히 보여준다. 경이롭다 못해 두려움까지 자아내는 생체공학의 세계가 증강현실을 다룬 에스에프(SF) 영화가 아니라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절단된 신체 일부를 인공물이 아니라 생체 조직의 재생으로 복구하기도 한다. 2004년 미군 해병 에르난데스는 이라크에서 포탄 파편에 맞았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의 90%가 찢어지고 근력의 절반을 잃었다. 포유류 동물은 심각하게 손상된 신체 부위를 시간을 들여 재생하기보다, 그 기능을 포기하고 재빨리 흉터 조직을 만들어 치명적 감염을 막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는 생체공학의 혜택을 누리는 운이 따랐다. 허벅지에 돼지 방광 조직을 이식했는데, 놀랍게도 근육이 재생된 것. 근력은 수술 이전을 웃돌았다. ‘줄기세포’의 마법이었다. 생체역학의 최대 과제는 인간을 더 튼튼하거나 빠르게 만들어주는 외골격 개발이다. 신체 기능을 보강하거나 인간에겐 없던 기능을 부여하는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이미 상당히 진전됐다. “어떤 사람은 이런 구상에서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전장에서 날뛰는 미군들, 또는 살인자 로보캅을 떠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지은이도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바이오닉 연구의 특정 분야는 국방부나 육군 연구소 등에서 군사기술 적용을 목표로 연구비를 지원한다. ‘생각 헬멧’이 그 중 하나다.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지 않고 뇌파를 해독하는 헬멧을 쓰고 “정신과 기계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다. 인간은 생각만으로 팔다리 또는 컴퓨터로 연결된 장치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미지를 음성신호로 변환하면 뇌의 시각피질이 활성화돼 머리 속에서 영상으로 재생되는 기술은 또 어떤가? 신체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기술들은 비인간적 기계 문명이 지배하는 미래를 풍자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마따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지은이는 인간증강 기술의 사회적 의미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선 섣불리 발언하지 않는다. 그 대신 현재 생명과학의 최전선을 두루 살펴보고 그 도전에 참여하는 이들의 동기와 면면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생체공학의 미래는 찬란한 유토피아와 암울한 디스토피아 사이의 광대한 스펙트럼에 펼쳐져 있다. 인류는 어느 쪽으로 가는 걸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국제일반 |
생체공학이 만든 증강 인간, SF가 현실로 |
애덤 피오리 지음, 유강은 옮김/미지북스·1만8000원 1982년 미국 청년 휴 허는 겨울철 암벽 등반 중 조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동상에 걸린 두 다리의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단순한 의족과 재활훈련은 사라진 다리를 대신하진 못했다. 불편함을 극복하려 로봇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는 직접 고안한 바이오닉 다리로 거듭났다. 각종 모터와 동작 감지 시스템, 유도미사일에 쓰이는 관성 측정 기술, 뇌의 운동피질 전기신호를 다리 동력에 전달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오늘날 인간은 과학기술과 정밀공학, 최신 의학이 접목된 생체공학 덕분에 자신의 신체를 복구하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의 프리랜서 기자 애덤 피오리의 <신체 설계자>는 ‘생체공학이 열어젖힌 매혹적인 비밀의 문’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지은이는 다리 근육이나 손가락이 잘렸다가 재생된 사람, 귀로 ‘보는’ 시각장애인,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마비된 뒤 텔레파시로 소통하려는 환자들, 인간의 몸을 재건하는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신체가 재생되고 기능을 되찾는 과정과 과학적 원리를 생생히 보여준다. 경이롭다 못해 두려움까지 자아내는 생체공학의 세계가 증강현실을 다룬 에스에프(SF) 영화가 아니라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절단된 신체 일부를 인공물이 아니라 생체 조직의 재생으로 복구하기도 한다. 2004년 미군 해병 에르난데스는 이라크에서 포탄 파편에 맞았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의 90%가 찢어지고 근력의 절반을 잃었다. 포유류 동물은 심각하게 손상된 신체 부위를 시간을 들여 재생하기보다, 그 기능을 포기하고 재빨리 흉터 조직을 만들어 치명적 감염을 막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는 생체공학의 혜택을 누리는 운이 따랐다. 허벅지에 돼지 방광 조직을 이식했는데, 놀랍게도 근육이 재생된 것. 근력은 수술 이전을 웃돌았다. ‘줄기세포’의 마법이었다. 생체역학의 최대 과제는 인간을 더 튼튼하거나 빠르게 만들어주는 외골격 개발이다. 신체 기능을 보강하거나 인간에겐 없던 기능을 부여하는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이미 상당히 진전됐다. “어떤 사람은 이런 구상에서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전장에서 날뛰는 미군들, 또는 살인자 로보캅을 떠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지은이도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바이오닉 연구의 특정 분야는 국방부나 육군 연구소 등에서 군사기술 적용을 목표로 연구비를 지원한다. ‘생각 헬멧’이 그 중 하나다.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지 않고 뇌파를 해독하는 헬멧을 쓰고 “정신과 기계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다. 인간은 생각만으로 팔다리 또는 컴퓨터로 연결된 장치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미지를 음성신호로 변환하면 뇌의 시각피질이 활성화돼 머리 속에서 영상으로 재생되는 기술은 또 어떤가? 신체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기술들은 비인간적 기계 문명이 지배하는 미래를 풍자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마따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지은이는 인간증강 기술의 사회적 의미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선 섣불리 발언하지 않는다. 그 대신 현재 생명과학의 최전선을 두루 살펴보고 그 도전에 참여하는 이들의 동기와 면면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생체공학의 미래는 찬란한 유토피아와 암울한 디스토피아 사이의 광대한 스펙트럼에 펼쳐져 있다. 인류는 어느 쪽으로 가는 걸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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