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8일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8일(현지시각) 기자들이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보내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괜찮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한국이 그 부분에 있어서 진행해나간다면 우리는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다만 “북한에 관한 우리 입장은 최대 압박 캠페인을 계속해나간다는 것”이라며 “우리의 초점은 비핵화에 있다”고 밝혔다.
대북 압박 기조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영국 런던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향한 강력한 외교를 이끌어왔다”며 “이 임무는 중요하고, 세계가 참여한 압박 캠페인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은 4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이후 제재를 핵심으로 하는 최대 압박 전략은 변함없이 유지하되, 국제적 제재와 무관한 한국의 인도적 대북 지원은 막지 않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 조치가 될 것”이라며 지지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미국이 한국의 식량 지원에 동의하고 나선 것은, 최근의 북-미 긴장 속에 유화적 분위기를 조성해 상황 악화를 막으려는 뜻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출구와 명분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은 그동안 ‘비핵화 관련 대북 압박 캠페인에 인도적 지원을 무기로 삼는다’는 국제사회와 지원 단체들의 비판에 부담을 가져왔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에 미국은 지난해 12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방한해 “대북 인도적 지원이 영향받지 않도록 미국인의 북한 여행 금지 조처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인도적 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려왔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에 이어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로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인도적 지원 구상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대표적 외교 성과로 꼽아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추가 행동을 차단하는 게 절박하다. 미국 행정부는 식량 지원이 북-미 긴장을 180도 반전시키진 못하더라도 경색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대화 모멘텀을 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들이 전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을 지지하면서도 ‘개입하지 않겠다’며 일정 거리를 유지한 것은, 핵심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북한이 식량 지원 카드에 어떻게 반응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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