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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중 ‘천안문 유혈진압’ 리펑 전 총리 별세

등록 2019-07-23 22:43수정 2019-07-23 22:46

1989년 6월4일 천안문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했던 리펑 전 중국 총리가 22일 노환으로 숨졌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3일 보도했다. 향년 90.

1928년 상하이 조계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의 부친은 중국 공산당 초기 핵심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리숴쉰이다. 리 총리가 3살 무렵이던 1931년, 부친이 국민당 쪽에 체포돼 처형된 이후 중국 혁명의 영웅 가운데 한명이자 마오쩌둥 주석의 동지였던 저우언라이 초대 총리가 리 전 총리를 양자처럼 돌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평생 중국 공산당 요직을 두루 거쳤던 리 전 총리의 삶이 역사에 기록된 건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때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자오쯔양 당시 공산당 총서기를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자오 전 총서기는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온정적인 태도 때문에 그해 5월 말 전격적으로 실각했다.

자오 전 총리 실각 직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혈진압까지 이어지는 동안 정국을 주도한 것은 당시 총리로 강경론을 주도했던 리펑이었다. 천안문 유혈진압 이후 리 전 총리가 당 총서기이자 최고지도자로 지명될 것이란 전망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쩌민 전 주석에 이어 ‘2인자’에 만족해야 했다. 천안문에서 흘린 피가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리 전 총리 역시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천안문에 대한 ‘회한’을 풀어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4년 8월 당 기관지 <구시>에 기고한 글에서 천안문 민주화 운동 무력진압은 덩샤오핑의 ‘확고한 지원’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17살에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이후 리 전 총리는 전문직 관료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특히 전력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중국 전력공업부 부장(장관)까지 지내기도 했다. 그는 총리 재직 시절이던 1992년 세계적인 환경파괴 논란을 뚫고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등 최고위직에 오른 뒤에도 중국의 전력 인프라 구축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식들을 통해 전력·석탄 등 에너지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거액을 부정 축재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자녀들 역시 조세회피와 비리 의혹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재직 시절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리 전 총리는 1994년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중국 총리로도 기록돼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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