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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4 14:35 수정 : 2019.09.04 19:55

이매뉴얼 월러스틴. 위키피디아

딸 캐서린 “31일 아버지 떠났다” 공지
세계를 단일한 자본주의 체제로 파악
중심부-주변부 비대칭 분업구조 주목

1998년부터 20년간 매월 ‘현안’ 논평
한겨레 고정 필자로도 꼬박 3년 기고

지난 7월1일 500번째 유언처럼 남겨
“선구적이고 영감 주는 사상가” 애도

이매뉴얼 월러스틴. 위키피디아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88.

미국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이며 세계체제 분석가인 월러스틴이 지난달 31일 세상을 떠났다고 이란 관영 <메르> 통신이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통신은 자세한 내용은 알리지 않은 채, “자본주의 비판자로 유명한 월러스틴이 별세했으며 2014년 3월 이란에서 열린 2개의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만 전했다.

영미권 출판사 ‘버쏘’도 2일 페이스북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딸 캐서린이 지인들에게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전한 글을 올렸다. 캐서린은 “아버지가 8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공유하게 돼 매우 슬프다”고 확인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는 항상 99살까지 살겠다고 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의 (사회)운동과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점을 안다”며 “올해 말이나 내년 봄에 예일대에서 아버지를 위한 추모 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학술단체인 ‘경제사회학과 정치경제(ES/PE)’도 1일 “아르아이피(RIP·평화롭게 잠들다) 월러스틴; ‘이것은 끝이다; 이것은 시작이다’”라는 제목의 추모 글에서 “우뚝 솟은 지식인이자, 선구적이고 영감을 주는 사상가이며, 걸출한 사회학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월러스틴은 1998년 10월부터 지난 7월초까지 20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로 빠뜨리지 않고 매달 두 차례에 걸쳐 세계의 다양한 현안들에 대한 논평을 해왔다. 그는 지난 7월1일, 500번째이자 마지막 논평의 제목을 “이것은 끝이다; 이것은 시작이다”라고 달았다. 한 시대의 폐막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예고한 제목의 이 논평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린 것으로도 해석돼 관심을 모은다.

월러스틴은 <한겨레>와도 인연이 깊다. 격주간 논평과 별개로, 1998년 10월부터 꼬박 3년간 <한겨레>의 칼럼니스트로서 정기적으로 글을 연재했으며, 그 뒤로도 특별기고 등을 통해 국제정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월러스틴은 1930년 미국 뉴욕에서 나고 자랐으며, 뉴욕에 있는 콜럼비아대학에 입학해 아프리카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이어 모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68년에는 미국과 유럽을 휩쓴 청년들의 반체제운동인 ‘68혁명’을 적극 지지했으며, 1976년 뉴욕주립대로 옮겨 1999년까지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 그는 2005년까지 같은 대학 산하 ‘경제, 역사 체제 및 문명들의 연구를 위한 페르낭 브로델 센터’의 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월러스틴은 1970년대 세계를 단일한 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하고,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의 비대칭적 국제분업 체계를 설명한 ‘세계체제론’으로 학계에 큰 파장과 논쟁을 일으키며 관심을 모았다. 그는 1974년 제1권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모두 4권을 쓴 대작 <근대 세계체제>에서, ‘자본주의적 농업과 16세기 유럽 세계경제의 기원’부터 20세기 초 ‘중도적 자유주의의 승리’까지 세계 자본주의 역사와 구조적 작동 방식, 거시적 차원의 사회 변동을 설명했다. 국내에도 전권이 번역돼 있다.

이전까지 고전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에서 사회 내부의 계급 또는 집단과 국민국가를 분석 단위로 삼았던 것과 달리, 월러스틴은 세계 전체의 유기적 결합과 역할 분담에 주목했다. 당시 국제정치학의 구조주의 이론 중 하나인 종속이론과 프랑스 아날학파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그리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 논평에서 “과거에 나는 ‘계급’이란 개념을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결정적 투쟁은 계급투쟁이라고 말해왔다”며, “미래에 살아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변화가 진짜가 될 수 있도록 자기 자신과 투쟁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지금도 나는 우리가 전환적인 변화를 만들 가능성은 단지 50 대 50일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월러스틴은 지난 1996년과 2006년 10월 두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고려대 초청으로 온 두번째 방한 때는 마침 북한의 핵실험 날이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지역의 미래 전망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때 ‘탈-미국 세계의 삶; 지리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투쟁’을 주제로 한 특별 강연회에서 그는 “20∼30년 내 한반도, 중국과 대만의 통일이 이뤄질 것이며 지역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동반자 관계가 훨씬 강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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