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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4 17:57 수정 : 2019.11.25 02:40

홍콩 지방선거(구의회)가 실시된 24일 오전, 홍콩 라이몬디중학교에 설치된 투표소 앞에서 이른 아침 투표하려는 유권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홍콩/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침부터 투표소 긴 줄…1시간 기다려 투표하기도
오후 7시30분 투표율 63.65%…역대 최고 투표율
“자유와 민주주의 목소리 대신 내줄 사람에 투표”

홍콩 지방선거(구의회)가 실시된 24일 오전, 홍콩 라이몬디중학교에 설치된 투표소 앞에서 이른 아침 투표하려는 유권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홍콩/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햇볕이 따가웠다. 24일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 긴 줄이 생기기 시작한 도심에선 약간의 흥분마저 느껴졌다. 홍콩 전역 600여 곳에 마련된 지방선거(구의회) 투표소마다 일찌감치 유권자가 몰렸다. 길게는 1시간씩 기다려야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녁 6시30분 이후 홍콩 선거를 통틀어 역대 최고 투표율 경신 행진을 이어갔다.

“이렇게 일찍 사람들이 몰릴 줄 몰랐다.” 이날 아침 8시께 일찌감치 카오룽 지역 카두리 선거구 투표소가 마련된 카리타스공동체센터를 일가족 3명과 함께 찾은 챈(39)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우리 목소리를 대신해 내줄 사람에게 투표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목소리’가 뭐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더니 “자유와 민주주의”라고 짧게 답했다.

홍콩 당국이 ‘안전’을 이유로 모든 투표소에 진압 경찰을 배치했지만, 투표소 주변에선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진압 장비를 갖춘 경찰 2명의 모습이 보였지만, 쉴 새 없이 들고 나는 시민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택시 기사 앤드루(40)는 “경찰한테 한마디 할까 하다가, 투표에 방해가 될까 봐 참았다”며 웃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승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데, 모두 시위대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모두가 공통으로 원하는 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앤드루는 “그래서 기성세대는 ‘안정’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위대 역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홍콩인이 누렸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두리 지역에선 이른바 ‘건제파’로 알려진 친중 후보와 범민주파 후보가 일대일로 맞붙었다. 올해 투표권을 얻었다는 대학생 마틴 청(19)은 “지난 6개월여 정부는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모르고, 그저 원하는 대로 대응해왔다”며 “원하는 대로 하면 그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등록 유권자가 3428명인 카두리 투표소에선 문을 연 지 2시간 만에 659명이 표를 던졌다. 20%에 육박하는 투표율이다. 기록적인 참여 열기는 이미 예견된 터다. 2015년 지방선거 당시 홍콩 인구 730여만명 가운데 등록 유권자는 약 312만명이었다. 현재 홍콩 인구는 4년 전에 견줘 20만명 남짓 늘어난 750만명 선이지만, 이번 선거 등록 유권자는 4년 전보다 100만명가량 늘어난 413만명에 이른다.

친중 진영도 이날 대대적인 ‘동원령’을 내렸다. 홍콩 주재 중국 정부 연락사무소에서 발행하는 <문회보>는 이날치 1면에 ‘건제전선 위급 상황, 당신의 한 표가 홍콩을 살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시내 곳곳에서 이를 무상 배포했다.

카오룽퉁 옥스퍼드로드에 자리한 웡풋남중학교 투표소는 등록 유권자가 6894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투표소가 마련된 학교 강당 앞으로 올라서자, 농구 코트 빼곡히 200여명이 지그재그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권에서 일한다는 알렉스(27)는 “50분 기다려 투표했다. 투표하려고 기다린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다”며 웃었다.

이 지역은 출마 후보자 3명 가운데 2명이 ‘범민주파’로 분류된다. 야당 소속 변호사 출신 정치인과 20대 ‘독립 민주파’ 청년이다. 20대 후보자는 “5대 요구, 하나도 뺄 수 없다”는 시위대의 으뜸 구호를 선거 홍보물에 담았다. ‘인생 첫 선거’라는 스테퍼니 콴(20)은 “검증된 인물에게 표를 줬다”고 했다. 그는 홍콩이공대에 남은 시위대를 향해 “투표 결과를 보고 마음을 결정하길 바란다. 제발 안전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젊은 층만 ‘전략 투표’를 한 건 아니다. 노먼 찬(68)도 “될 사람을 찍었다”고 했다. 그는 홍콩 정부에 “학생들 그만 좀 때려라. 최루탄도 그만 좀 쏴라.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이제는 귀와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여 열기는 온종일 식을 줄 몰랐다. 이미 오후 3시30분(현지시각)에 2015년 구의회 선거 때의 최종 투표율(47.01%)과 총투표수(146만7229)를 모두 넘어섰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 집계 오후 7시30분 현재 투표율은 63.65%(투표수 2639만466)로, 그간 최고 투표율인 2016년 입법회 선거(58.28%)는 물론 입법회·구의회 선거를 포함해 홍콩 사상 최고의 투표율이다. 투표는 밤 10시30분까지 진행됐다. 몽콕북 투표소 앞에서 시간대별 투표율을 확인하던 대학생 유키(22)의 입가에선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새삼 놀랍다.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홍콩이 뒤집어졌다.

홍콩/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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