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확산에 심각하게 잘못 대처하고 은폐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WHO) 자금지원을 중단했다. 세계보건기구의 ‘코로나19 대처 실패’를 주장하며, 대응 실패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발생에 대응해 “자신의 기본 의무”를 못했다며 미국 몫의 자금지원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처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에서 자금지원 보류를 검토한다고 밝힌 지 8일 만에 이뤄졌다. 미국은 지난해 세계보건기구 전체 예산의 15%인 4억달러(약 4864억원)를 제공한 최대 공여국이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코로나19의 확산에 심각하게 잘못 대처하고 은폐한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자금지원을 중단하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보건기구는 기본적 의무에서 실패했고,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우리는 미국의 관대함이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다”며 이런 지시를 내렸다.
트럼프는 중국 우한에서 지난해 말 코로나19가 처음 발발한 이후 세계보건기구가 그 위험성을 적절하게 평가하는 데 실패했다며 최근 들어 비난 발언을 이어왔다. 그는 이날도 “세계보건기구가 당시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의료진을 파견하고 중국의 투명성 부족을 밝혀내는 데 역할을 했더라면 코로나19 발생은 아주 적은 사망자를 내는 선에서 봉쇄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런 조처를 했더라면 수천명의 생명을 구하고 세계적인 경제 피해를 막았겠지만, 대신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중국 정부의 조처들을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이번 조처는 미국이 코로나19 최대 확진국이 되는 등 대응 실패 논란이 고조되자, 세계보건기구에 책임을 돌리려는 처사로 비판받고 있다. 이날 기자들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응을 칭찬하고 미국 내에서의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안일한 대응으로 비난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이 기구가 1월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에도 트럼프가 코로나19를 독감에 비유하며 그 심각성을 계속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조처는 코로나19 발생에서 보건기구에 책임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점증하는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특히 국제기구에서의 영향 확대를 봉쇄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비비시> 방송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 행정부 관리들 역시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중국의 기만적인 초기 주장을 지지했고, 사태를 은폐하려는 중국의 기도를 반박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중국발 입국 금지 검토’를 세계보건기구가 비판했다는 점을 증거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매년 4억~5억달러의 자금을 세계보건기구에 제공하는데, 중국은 대략 4천만달러만 낸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에 내던 자금을 다른 국제 보건기구에 재분배하겠다며, 다만 의미 있는 개혁을 위해 세계보건기구에 계속 관여하겠다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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