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19일 ‘육군의 날’을 맞아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브라질 등 주요 개도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브라질리아/AP 연합뉴스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이 코로나19 사태로 3중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급증한 정부 부채가 위험을 더하는데다가, 주요 수출 품목인 원유 등 원자재 수요 전망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개도국에 과거의 경제위기와 비교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힐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19일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된 뒤 개도국에서 빠져나간 자금 규모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나 2015년 중국 증시 폭락 때보다 훨씬 크다고 보도했다. 1월21일부터 90일 동안 25개 개도국에서 빠져나간 외국계 자본은 약 1000억달러에 이르렀다. 2008년 8월9일부터 90일 동안은 260억달러 정도가 빠져나갔다. 2015년 6월26일부터 90일간 자금 유출 규모는 70억달러 수준이었다. 이번엔 특히 브라질과 멕시코의 자본 유출 규모가 컸다. 1월21일부터 11주 동안 브라질과 멕시코 증시에서 빠져나간 돈은 각각 130억달러, 75억달러 수준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국제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국제금융협회(IIF)도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개도국 자본 유출이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올해 25개 주요 개도국에 대한 외국계 투자 규모는 2019년(9370억달러)의 절반에 못 미치는 4440억달러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나마도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면 3040억달러로 2004년 이후 최저치가 될 거라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과거 경제위기 때보다 상황을 어둡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정부 부채다. 국제금융협회 자료를 보면, 2019년 말 현재 30개 주요 개도국의 총부채는 10년 전에 비해 43조달러 늘어난 71조달러다. 30개국 국내총생산(GDP)의 220%에 이르는 수치다. 브라질의 정부 부채는 10년 새 국내총생산의 65%에서 89%로 늘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32%에서 64%로 증가했다.
이미 외채 위기의 조짐도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16일 830억달러의 상환을 3년 동안 유예하고 이자를 62% 낮추는 안을 국제 채권단에 제시했으나 채권단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채권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르헨티나가 이 안을 그대로 받거나 아니면 말거나 식으로 나온다면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이 결렬돼 아르헨티나가 일방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경제가 예전만 못한 것도 개도국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중국이 브라질 등 주요 개도국의 원자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나, 올해 1분기에는 1976년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제 앞가림도 벅차다. 이 때문에 서부텍사스유(WTI)가 20일 한때 21년 만의 최저치인 15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등 산유국의 감산 합의 이후에도 유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개도국 전략가 피닉스 케일런은 “개도국 성장을 주도할 강력한 터보엔진이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실로 만만치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14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주요 39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올해 성장률을 -1.0%로 전망했다. 통화기금은 브라질(-5.3%), 멕시코(-6.6%), 남아공(-5.8%), 러시아(-5.5%)의 경제 침체가 특히 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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