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값이 쌀 때 사서 큰 이익을 보자'는 개인 투자자들이 4월20일 서부텍사스유 선물 가격 대폭락 등 선물시장 혼란을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합뉴스
‘석유가 쌀 때 사서 큰 이익을 보자’는 개인 투자자들의 야심이 국제 원유시장 가격 질서를 흔드는 지경까지 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소속 옥스퍼드에너지학연구소는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이 지난달 20일 -37.63달러까지 떨어지는 등 대혼란을 겪은 건, 선물시장에 연금펀드 등에 이어 일반 투자자까지 대거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24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미래에 석유를 살 권리와 팔 권리를 거래하는 석유 선물시장은 전통적으로 장기 투자자들이나 원유 생산업자들이 화폐 가치 하락 등에 대비해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온 금융시장이다. 하지만 금융 기법이 발달하고 정보통신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선물시장의 문턱이 낮아지자, 연금기금, 국부펀드, 대학들이 조성한 기금 등이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일반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큰손’으로 부상했다. 실수요자가 아닌 이들은 만기 전에는 보유분을 무조건 청산해야 해서, 큰 손실을 보는 동시에 엄청난 가격 변동을 유발했다.
보고서는 미국 증시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되는 ‘미국석유펀드’(USO)나 ‘프로셰어스 울트라 블룸버그 원유’(UCO), 홍콩 증시에 상장된 ‘삼성 에스앤피(S&P) GSCI 원유 선물 상장지수펀드’(S&P GSCI), 중국은행의 ‘위안유바오’ 등이 대표적인 펀드라고 설명했다.
4월 한때 뉴욕상업거래소(NYMEX) 전체 원유 선물거래량 6월 인도분의 25%까지 보유했던 최대 펀드인 미국석유펀드는 처음 등장한 2006년부터 지난 4월 중순까지의 수익률이 -94%에 이른다. 하지만 ‘석유가 쌀 때 사두자’는 개인 투자자들은 이런 실적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온라인 투자 사이트 로빈후드에 등록된 계좌 가운데 이 투자 계정은 지난 2월 말 8천개에 불과했지만, 4월28일에는 22만905개로 늘었다. 이런 투자 열풍 속에 이 펀드의 자산은 2019년 말 12억달러에서 지난 5월8일 39억달러로 늘었지만,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끼친 이후 대대적인 투자 구성 변경에 들어갔다.
보고서는 개인 투자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석유 생산·유통업자 등의 배를 불려준 석유 선물가격 대폭락이 반복될 가능성이 당분간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혼란이 투자자와 원유 생산자 등 시장 참여자들에게 장기적으로 끼칠 악영향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기섭 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