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의 약사가 호흡이 곤란한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호르몬제 덱사메타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염증 치료 등에 사용하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 덱사메타손이 코로나19 중증 환자의 사망 위험을 크게 낮춰준다는 시험 결과가 나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16일 보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주도하는 과학자들은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해 이런 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코로나19 입원 환자 중 2천명에게 소량의 덱사메타손을 투여한 뒤 다른 환자 4천명과 비교했다. 비교 결과,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환자에게 덱사메타손을 투여하면 사망 위험이 28∼40%, 기타 산소 치료를 받는 환자의 경우는 사망 위험이 20∼25%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비시>(BBC) 방송은 호흡에 문제가 없는 가벼운 환자에게는 이 약이 별 도움이 안 되지만, 중증 환자에게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덱사메타손은 염증 억제작용이 있으며 면역 억제 효과도 나타내는 약물이다. 백혈구 등 면역 관련 세포의 능력을 낮추어 염증을 완화시키고, 림프계의 활성을 감소시켜 면역반응을 억제한다. 하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의한 감염질환에 대한 저항성을 약화시키거나 감염을 일으킬 수 있고, 시력 장애 등의 부작용도 있어서 의사 처방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약물이다.
연구팀을 이끈 옥스퍼드대 마틴 랜드레이 교수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 등에게 효과가 있는 게 분명했다”며 “열흘동안 덱사메타손을 투여해도 5파운드(약 7500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동 연구자인 피터 호비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현재까지 코로나19 사망 위험을 현저하게 낮춰주는 게 확인된 유일한 약품”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덱사메타손을 당장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맷 행콕 영국 보건장관은 “덱사메타손은 값이 싸고 구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환자에게 즉시 처방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발표에 대해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매우 훌륭한 소식으로서 영국 정부에 축하를 보낸다”며 “옥스퍼드대와 병원, 시험에 참여한 여러 환자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 병원의 캐스린 히버트 집중치료 과장 등 일부 전문가들은 시험 결과 데이터에 대한 검증 전까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17일 덱사메타손과 관련해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치료제라기보다는 염증 반응을 완화할 목적으로 쓰는 보조적인 치료제로 판단한다”면서 “국내 의학 전문가들은 덱사메타손이 면역을 같이 떨어뜨려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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