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샨트 싱 라지푸트 주연 영화 〈케다르나트〉의 포스터
인도 ‘발리우드’ 영화판은 무한 경쟁이 벌어지는 정글 같은 곳인가? 우울증 등에 시달리던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인도 연예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인도의 인기 남성 배우 수샨트 싱 라지푸트(34)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인도 영화판의 치열한 경쟁과 인맥 중심으로 돌아가는 파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과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 등이 16~17일 잇따라 보도했다.
라지푸트는 22살 때인 2008년 텔레비전 드라마로 데뷔한 뒤 <카이 포 체>(2013) <M.S. 도니>(2016) <케다르나트>(2018) 등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많은 인도 배우들이 연예계 출신 부모 등의 지원을 업고 성장한 것과 달리 라지푸트는 스스로 경력을 개척해 최고 스타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는 특히 인도 중산층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고 <로이터> 는 전했다.
라지푸트가 지난 14일 뭄바이의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이후, 그가 치열한 경쟁의 압박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닐 메시무크 마하라슈트라주 내무장관은 경찰도 이런 각도에서 그의 죽음을 조사할 것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최근 34년의 삶을 마감한 인도 영화계 스타 수샨트 싱 라지푸트. 그의 죽음은 발리우드의 치열한 경쟁과 파벌 문화에 대한 비판을 촉발했다. 아마다바드/AP 연합뉴스
라지푸트의 사망은 그의 매니저였던 디샤 살리안이 28살 나이로 숨진 지 닷새 만의 일이어서 더욱 충격을 줬다. 여러 유명 연예인의 매니저로 일한 여성인 살리안은 지난 9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추락했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여성 배우 프렉샤 메타(25)가 자신의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메타는 유서에서 자신의 최근 활동에 대한 좌절감을 드러냈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다.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해 배우로 변신한 남성 연예인 쿠샬 푼자비도 지난해 12월26일 뭄바이 자신의 집에서 자살로 42살의 생애를 마감했다. 현지 언론들은 그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들은 이전에도 꽤 있었다. 배우 프라튜샤 바네르지가 2016년 4월 2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사이 프라샨트도 같은 해 31살에 숨졌다. 또 인도계 미국인으로, 발리우드 배우로 활동한 지아 칸은 2013년 6월 25살로 삶을 마감했다.
유명 정신과 의사 고라브 굽타는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봉쇄 조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구실을 했다”며 “최근 많은 사람이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유명인들의 경우 이런 고통을 주변에 털어놓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발리우드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은 인도 영화판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인도 영화계는 미국 할리우드에 버금갈 정도로 큰 산업을 이루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밀린다’는 극도의 경쟁심이 업계를 지배한다. 영화감독 비베크 아그니호트리는 트위터에 쓴 글에서 “(인도 영화판은) 산업도, 기업체도 아니다. 모두가 남들보다 더 크려고 갈망하는 욕망의 정글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경쟁의 밑바닥에는 불공정 경쟁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다. <로이터>는 라지푸트의 사망을 계기로 카푸르 가문 등 몇몇 가문이 4세대에 걸쳐 영화계를 지배하는, 폐쇄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라지푸트의 동료들은 인맥도 없이 발리우드에서 스타로 떠오른 그를 몰아내려는 파벌 문화를 언급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그니호트리 감독은 “숲은 모든 나무가 함께 자랄 때만 숲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인도 영화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