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폭스 뉴스>의 유명 앵커 터커 칼슨(왼쪽). ‘터커 칼슨 투나이트’ 방송 화면 갈무리.
“폭도들이 이 나라를 배회하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물건들을 파괴하고 있다.” “문화혁명이 서구로 와버렸다.”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미국의 시위대를 비난하는 이 발언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지난 3일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과 4일 백악관에서 한 연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는 미 보수 케이블 채널인 <폭스 뉴스>의 유명 앵커 터커 칼슨(51)이 방송에서 해온 말이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5일 칼슨의 최근 6주간 방송 발언과 트럼프의 독립기념일 연설이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환기하면서 “트럼프가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싶으면 ‘칼슨의 모놀로그’(칼슨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잘 지켜보라”고 꼬집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이 인종차별 반대 여론 확산을 계기로, 박물관 입구에 미 원주민과 흑인 남성을 거느린 모습으로 설치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기마상을 철거하기로 한 것을 두고 칼슨과 트럼프가 잇따라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칼슨이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루스벨트가 캔슬(cancel·취소)될 걸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다. 그는 미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한 뒤, 트럼프는 3일 연설에서 “그들(시위대)의 정치적 무기는 ‘캔슬 컬처’(자기 생각과 다른 이를 거부하고 배제하는 문화)다. 루스벨트는 우리나라 문화와 정체성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칼슨이 “이 나라를 위해 나설 사람은 미국인이다. 몇몇 시민들이 법, 역사,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과 트럼프가 연설에서 “미국인은 우리의 가치와 역사, 문화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도 비슷하다.
<폭스 뉴스>는 트럼프가 가장 선호하는 채널이며, 칼슨은 그중에서도 트럼프가 매우 신뢰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칼슨은 반이민과 외국 전쟁 개입 반대 등 트럼프와 같은 ‘미국 우선주의’를 방송에서 설파해왔다. 지난해 6월 트럼프가 이란 공격 방침을 철회했을 땐 칼슨의 공개적 반대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미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 판문점에서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때도 칼슨이 동행했다. 칼슨의 ‘터커 칼슨 투나이트’는 올해 2분기 조사에서 케이블 뉴스 가운데 시청자가 가장 많은 프로그램으로 집계됐다. 칼슨의 막강한 인지도와 영향력 때문에 공화당 전략가들은 그를 2024년 대선 주자로 거론하기도 한다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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