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임상시험 자료를 다루고 있다. 부자나라들의 백신 선점 경쟁이 국제 협력을 저해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소외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옥스퍼드/AP 연합뉴스
미국, 영국 등 부자나라들이 잇따라 코로나19 백신 개발 업체들과 우선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국제 협력을 저해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소외시킬 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2차 확산이 진행되면서 미국과 영국 등 부자나라의 백신 확보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미국 화이자가 공동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3000만개를 2년안에 공급받기로 두 회사와 합의했다. 영국은 프랑스 기업 발네바(Valneva)가 개발중인 백신 6000만개도 내년에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가격 등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도 뒤질세라 지난 22일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의 백신 1억개를 확보해 미국인들에게 무료로 접종하기 위해 19억5천만달러(약 2조3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등의 이런 행보는 가격이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등을 둘러싼 불필요한 다툼을 유발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소외시킬 우려가 높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유엔의 후원을 받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세스 버클리 최고경영자는 “각국의 사전 계약은 개발을 촉진하고 제조 시설을 확충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불필요한 경쟁, 공급 부족, 공급망 최적화 저해 등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 일부 국가는 앞서 영국과 스웨덴 합작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5월 이 회사가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백신이 나오면 9월까지 3000만개를 공급받는 등 총 1억개를 받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정부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이끄는 유럽 포괄백신연합(IVA)에도 각각 4억개의 백신을 공급할 예정이다.
제3세계가 기댈 만한 곳으로는 ‘인도 혈청연구소’가 꼽힌다. 세계적 규모의 백신업체인 이 연구소는 올해말까지 4억개 등 총 10억개의 백신을 제3세계에 공급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이 연구소는 코로나19 백신 연구 초기인 지난 4월말부터 옥스퍼드대학이 개발에 들어간 백신의 대규모 생산 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과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도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3억개를 제3세계용으로 확보한 상태다.
피터 피츠 미국 식품의약국(FDA) 전 부국장은 “거대 제약회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챙길 것”이라며 “회사들이 지금은 서로 다른 말들을 하지만 그 말의 뜻은 결국 똑같은 것(이익)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부자나라들의 백신 확보 경쟁과 관련해 제약회사의 한 임원도 “미래에는 더 나은 공급 방식이 필요하다”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인정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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