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가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5일(현지시각) 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가 25일(현지시각)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째날 연사로 나서, 11월 대선에서 남편을 지지해줄 것으로 호소했다. 멜라니아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외면하다시피한 다른 연사들과 달리, 팬데믹 현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들과 의료진에게 위로와 감사를 표해 주목을 받았다. 분열과 공격의 언사를 내뿜는 남편과는 다른 면모로 대조를 이룬 것이다.
멜라니아는 이날 밤 수십명이 모여 앉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편 트럼프 지지 연설에 나섰다. 이 정원은 멜라니아가 감독해 최근 새단장을 마친 곳이다. 멜라니아는 남편과 나란히 연설 무대로 걸어나왔던 4년 전과 달리, 백악관 회랑을 혼자 걸어서 야외 연설대 앞에 섰다. 트럼프는 그보다 앞서 나와 청중의 맨앞에 자리한 채 박수로 아내를 맞이했다.
멜라니아는 연설에서 “나는 3월부터 우리의 삶이 급격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다”며 “보이지 않는 적이 우리의 아름다운 나라를 휩쓸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이들를 잃은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보내며,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바란다. 내 남편의 행정부는 모두를 위한 효과적인 치료제와 백신이 나올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멜라니아는 “이 어려운 시기에 나서준 의료진과 일선의 근무자들,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멜라니아를 두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팬데믹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자신의 대처를 자찬했고, 이날 멜라니아에 앞서 연설한 래리 커들로 국가경제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가 지나간 것처럼 언급했다.
멜라니아는 인종차별 문제도 언급했다. 지난 이틀 동안 “미국은 인종주의 국가가 아니다”(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라는 등 현실을 외면하고 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주력했던 다른 연사들과 다른 톤이었다. 멜라니아는 “우리 역사의 일부에 대해 우리가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고 인종차별을 에둘러 시인하고, “나는 사람들이 과거로부터 배우되 미래에 집중하기를 독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많은 인종들과 종교들, 민족들로 구성된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멜라니아는 자신이 지난 2년여동안 추진해온 아동복지 프로그램인 ‘비 베스트’(Be Best)를 언급하면서 어린이들의 약물 중독과 소셜미디어의 해악을 강조했다. 그는 언론을 향해 “가십 말고 중독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또 “엄마들에게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며 자녀들을 소셜미디어의 나쁜 점에서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기술의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면서 “당신들의 다수는 소셜미디어가 얼마나 상스럽고, 조작적인지 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곳의 엄마와 부모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전사다. 나와 남편은 당신과 가족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목을 놓고 미 언론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공격적이고 사악한 용어들을 쏟아내는 이가 그의 남편 트럼프라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멜라니아는 “다른 쪽을 공격하는 데 이 소중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지난주에 봤듯이 그런 얘기는 나라를 더 분열시킬 뿐”이라며 지난 17~20일 전대를 한 민주당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도널드는 당신을 위해 일한다. 나라를 사랑하고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말 뿐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며 “그가 미국에 최선”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멜라니아가 25분간의 연설을 마치자 청중은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트럼프는 연단에 올라가 포옹하고 키스한 뒤 함께 손 잡고 건물 안으로 퇴장했다.
4년 만에 이뤄진 멜라니아의 전대 연설을 놓고 관심을 모은 것은 멜라니아가 ‘자신의 언어’로 말할 것인가였다. 트럼프가 처음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2016년 전대 때 멜라니아는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그가 한 연설의 일부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 2008년 민주당 전대에서 한 연설의 표현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삶에서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 “네 말이 네 굴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존경을 갖고 대하라”, “성취로 가는 유일한 한계는 꿈을 향한 열망의 강도와 의지 뿐” 등의 표현이 그것들이다. 이번 연설을 앞두고 멜라니아의 비서실장 스테파니 그리셤은 언론에 “모든 단어들이 그(멜라니아)에게서 나왔다. (모사가 아닌) 진짜”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멜라니아의 연설 때 로즈가든에 모여 앉은 수십명의 참석자들 가운데 마스크를 착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공화당 전대는 민주당 전대와 달리 트럼프를 비롯한 참석자들끼리의 대면 행사가 많지만, 마스크를 쓴 이는 보기 어렵다.
공화당 전대는 27일 밤 트럼프가 백악관 잔디밭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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