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힘없는 제3세계 국가의 돈세탁만 문제 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건물.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오는 10월 돈세탁 관련 제재 대상국을 대폭 확대할 예정인 가운데 옛 유럽 식민지 등 작은 나라들만 차별적으로 제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카리브해 지역 전문 경제학자 말라 두카란은 26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연합이 회원국이나 미국과 영국의 해외 영토, 사우디아라비아 등 돈세탁이나 테러자금 지원 혐의가 있는 큰 나라들은 놔두고 ‘비백인 국가’나 과거 유럽 식민지들만 제재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유럽연합이 돈세탁 문제를 작은 나라들에 대한 경제 무기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은 2016년 9월 돈세탁이나 테러자금 지원 혐의를 받는 아프가니스탄, 북한, 시리아, 예멘 등 8개국을 ‘고위험 제3자 국가들’로 분류하고 제재를 시작했다. 2018년에는 트리니다드토바고와 파키스탄을 추가했고 10월부터는 가나, 몽골, 미얀마, 바하마, 자메이카, 캄보디아 등 12개국도 제재할 계획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초 푸에르토리코 등 미국 영토 3곳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된 제재 대상국 초안을 내놨으나, 미국의 반발과 유럽연합 내부 비판으로 초안을 철회한 바 있다. 두카란은 지난해 네덜란드를 거친 돈세탁 규모가 130억유로(약 17조원)에 이른다는 위트레흐트대학 연구팀의 분석 결과 등을 거론하며 유럽연합의 일관되지 못한 대응을 비판했다.
두카란은 유럽연합의 차별적 대응은 ‘과세 비협조 국가 명단’에서도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조세 회피 방지 노력에 협력하지 않는 나라들을 제재하기 위해 2018년부터 작성된 이 명단에는 현재 카리브해의 케이맨제도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피지 등 12개국이 들어 있다. 이 명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와도 차이가 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대체로 협조적’이라고 평가한 바베이도스 등 일부 국가가 유럽연합 명단에 포함됐다가 최근 빠졌고, ‘부분적으로 협조적’이라고 평가한 터키나 가나 등은 명단에 없다.
돈세탁 제재 대상국은 자금 출처 입증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유럽연합의 금융 관련 서비스 접근이 차단된다. 과세 비협조 제재 대상국은 유럽연합의 개발 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상업 활동에 대한 감독도 강화된다. 유럽연합의 제재와 별도로 회원국 차원의 추가 제재도 가능하다.
두카란은 “유럽은 작은 나라들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 앞서 내부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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