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최근 파산 뒤 매각된 미국 백화점 제이시(JC)페니의 상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파산은 하지 않았지만 빚에 대한 이자 갚기도 버거운 ‘좀비 기업’이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시애틀/AP 연합뉴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늘리면서, 부채에 대한 이자 갚기도 버거운 ‘좀비 기업’도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지원책이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살리지만 부실기업도 늘리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는 셈이다.
미국 펀드 운영사 루솔드그룹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3000개 대기업 중 영업이익이 3년 연속 부채에 대한 이자보다 적은 기업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15%가 이런 상태로 나타났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전체 기업의 16% 정도가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던 2000년 이후 최고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의 좀비 기업은 1990년대에 6~10% 수준을 오르내리다가 1990년대 말 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 이후 꾸준히 줄어 2008년 8%까지 떨어졌지만, 저금리 시대가 오면서 지난해까지 다시 13% 수준으로 늘었다고 루솔드그룹은 밝혔다.
최근 좀비 기업이 빠르게 느는 것은,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채권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여파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설명했다.
준 추 루솔드그룹 자산관리 담당자는 “좀비 기업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한다”며 “금융시장에 돈이 마르면서 기업들이 부채 상환을 못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냐”고 반문했다.
영국의 상황도 나을 게 없다고 경제 통신 <블룸버그>가 전했다. 영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 온워드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영국 기업 가운데 20%가량이 좀비 기업일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난 3월 시작된 봉쇄 조처 이후 정부가 500억파운드(약 75조원)의 자금을 기업들에 지원하면서, 부실기업 비중도 4.3%포인트 늘었다고 분석했다.
영국상공회의소의 최근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빚을 얻은 기업 4곳 중 한 곳꼴로 부채 상환을 위해서는 사업을 축소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좀비 기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은행은 최근 내놓은 ‘좀비 기업: 해부와 생애 주기’ 보고서에서 좀비 기업이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 14개 선진국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난 30년치를 분석해보니, 좀비 기업 가운데 25%는 파산 등으로 사라졌고 60% 정도는 상황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60%가 좀비 기업을 탈피했다는 점 때문에 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도 경영이 다시 악화할 위험이 아주 크다”고 지적했다. 좀비 상태에서 벗어난 다음해에 다시 좀비 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17%로 나타났다. 이는 건전한 기업이 좀비 기업이 될 확률보다 3배 높은 수치라고 보고서는 소개했다.
이 보고서가 규정한 좀비 기업은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기도 버거운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고, 자산의 장부 가치 대비 주가 총액이 전체 기업 평균치에 미달해서 성장 가능성이 작게 평가되는 기업을 말한다. 보고서는 좀비 기업으로 추락하는 전조 증상으로, 이윤, 생산성, 고용, 투자가 한꺼번에 주는 걸 꼽았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