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의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무장관(왼쪽부터)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랍에미리트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외무장관이 1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15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서명식을 한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관계 정상화 협정으로, 오는 11월3일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내세울 외교적 성과를 챙겼다.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이뤄진 서명의 직접 당사자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아랍에미리트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외무장관, 바레인의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무장관이었다. 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감격에 젖은 이는 이번 협정을 중재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코로나19 대응과 인종차별 논란 등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호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우리는 역사의 경로를 바꾸기 위해 오늘 오후 여기에 있다”며 “수십년의 분열과 갈등 끝에 우리는 새로운 중동의 여명을 맞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참석한 지도자들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모든 믿음과 배경의 사람들이 평화와 번영 속에 함께 살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중대한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말했다.
이날 서명은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바레인 사이의 양자 협정과 3국의 협정에 대해 이뤄졌고, 트럼프 대통령도 증인으로 서명했다.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이집트(1978년)와 요르단(1994년) 이후 26년 만이며, 이날 서명으로 4개국으로 늘었다. 이집트·요르단과의 관계 정상화 또한 미국이 중재한 결과였다. 이날 관계 정상화 협정은 이란의 위협에 대한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바레인의 공동의 우려와, 이란에 최대한의 압박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미 행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이해관계와도 잘 맞는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피스메이커’를 자임하며 중동 평화 등 외교 성과를 추구해왔다. 정치 전문매체 <더 힐>은 “재선 선거운동의 마지막 몇주로 향하는 현직 대통령을 위한 외교적 성과”라고 짚었다. 이번 협정 체결은 최근 여론조사상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일부 이탈한 것으로 나타나는 기독교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명식에는 약 800명의 전·현직 관료와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했는데, 공화당 내 대표적 ‘반트럼프’ 인사인 밋 롬니 상원의원도 동참했다. 롬니 의원은 성명을 내어 “중동에서의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은 이란 같은 악랄한 행위자에 대항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미 국가안보 이익에 도움이 된다”며 “대통령과 행정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고 찬사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명은 언급하지 않은 채, 앞으로도 5개의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또 이란도 결국 미국과 핵 협상에 나올 것으로 낙관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노벨상까지 언급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백악관은 서명식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왜 노벨상 수상 자격이 있는지 보여준다’는 <폭스 뉴스> 기사 등을 모아서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트럼프 재선캠프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평화를 이뤄냈다”며 그가 노르웨이의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노벨상 후보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함께 언급했다.
유대인민주위원회의 헤일리 소이퍼 상임이사는 이번 협정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동기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세차례의 이스라엘 선거에서 네타냐후 총리에 힘을 실어줬고, 이제 네타냐후가 국내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워싱턴에 왔다”며 “이게 대선 48일 전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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