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21일 코로나19 경기부양안 처리를 위해 의회에 들어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약 9000억달러(약 1000조원) 규모 경기부양안이 안갯속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개인당 지원금 인상을 야당인 민주당이 오히려 찬성하고 여당인 공화당은 거부하면서,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경기부양안의 내용 중 ‘개인당 지원금 600달러’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정을 요구한대로 2000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자고 제안했으나, 공화당 하원 지도부는 24일(현지시각) 이를 거부했다. 공화당은 그동안 개인 지원금 인상에 대해 재정적자를 우려하며 반대해왔고, 600달러 방안 또한 트럼프 정부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공화당 지도부의 의견이었다.
롭 위트먼 등 공화당의 일부 하원의원들은 민주당의 ‘개인당 지원금 2000달러로 인상’ 주장에 맞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들어있는 캄보디아·이집트 등 외국에 대한 원조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 코로나19 경기부양안을 비난하면서 삭감을 요구한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화당의 이 요구를 일축했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성명을 내어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대통령도 동의한 2000달러 지급을 미국인들로부터 잔인하게 빼앗버렸다”며 “대통령이 2000달러 직접 지급에 진지하다면 그는 공화당 하원의원들에게 이걸 방해하지 말라고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부양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의결 투표에 들어간다. 재의결이 되어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가 무효화되려면 상원과 하원에서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공화당 상원 지도부인 로이 블런트 의원은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가 무효화되겠느냐는 질문에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은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 눈치를 본다고 전한다. 경기부양안은 1조4천억달러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부양안에 28일 밤까지 서명하지 않으면 연방 정부 셧다운(업무 일시정지) 사태도 온다. 내년 1월3일 임기를 시작하는 새 의회에서 경기부양안을 다시 짜야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블런트 의원은 이미 통과한 경기부양안을 다시 논의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여기서 빠져나오는 최선의 길은 대통령이 서명하는 것이고,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 그렇게 결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질문에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경기부양안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 위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머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이날 이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는 의회에서 초당적 찬성으로 통과된 내년도 국방예산인 국방수권법안(NDAA)에 거부권을 행사해, 이를 의회에서 다시 떠안게 된 공화당을 고민에 빠뜨렸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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