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8일(현지시각) 워싱턴의 의사당 안에서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을 하원이 28일(현지시각) 재의결했다.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재의결되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거부권이 무력화되는 첫 사례가 된다.
하원은 이날 저녁 내년도 국방예산안인 국방수권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322표, 반대 87표로 재의결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데 필요한 3분의 2 찬성 요건을 넘긴 것이다.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이달 초 이 법안 통과 때보다 줄긴 했어도 109명이 재의결에 가담했다.
지난 8일과 11일 하원과 상원을 잇달아 통과한 7410억달러(약 810조원) 규모의 국방수권법안에는 군인 급여 인상과 중국 견제를 위한 ‘태평양 억지 구상’ 등이 들어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페이스북 등에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와 관련해 해당 소셜 플랫폼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과 옛 남부연합군 장군의 이름을 딴 군 부대 명칭을 변경하도록 한 점 등을 이유로 지난 23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법에는 주한미군 등 해외주둔 미군 감축을 의회가 제한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하지만 국방수권법은 대체로 의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이 서명해 곧장 법으로 시행되는 게 미국의 전통이었다. 이 때문에 여당인 공화당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불만이 제기됐다. 이날 재의결 표결에 앞서 하원 군사위 공화당 간사인 맥 손베리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국가의 최고 이익을 우선시해달라”며 애초의 법안에 그대로 찬성표를 던져줄 것을 호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에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까지 포함해 9차례이지만, 하원에서 거절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체면을 구긴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임기를 불과 20여일 앞두고 무리하게 거부권을 행사한 그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국방수권법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이 최종적으로 무력화되려면 공화당이 다수를 점한 상원에서도 3분의 2가 동참해야 한다. 이 법안은 지난 11일 상원에서 84 대 13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뒤 공화당 안에 그에게 동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원은 29일 이 법안 처리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절차를 늦출 경우 상원 표결은 이번 의회 임기 종료 몇 시간 전인 1월3일 오전에 이뤄질 수도 있다고 <더 힐>은 지적했다.
한편, 미 하원은 이날 민주당 주도로 코로나19에 대응해 미국인들에게 주는 지원금을 1인당 6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화당은 재정적자를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해, 상원 통과 전망은 낮다.
만약 상원에서 국방수권법안이 재의결되고 개인 지원금 인상안은 부결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중요한 1월5일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내분하는 모습이 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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