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이 없어 썰렁한 독일 베를린의 신년 축하 행사장에 ‘2021년 환영’이라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다. 새해에는 각국이 경제 회복과 함께 공공 부채 위기 차단도 중요 경제 과제로 직면할 전망이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전 세계가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침체의 이중고 속에 새해를 맞은 가운데, 유럽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은 한 가지 어두운 기억을 더한 채 새해를 시작했다. 2009년부터 5년가량 이어진 국가 부채 위기의 상흔이 되살아난 것이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해 유럽연합(EU)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실시한 뒤 포르투갈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함께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에 의존해야 했고, 위기의 여파는 2014년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 포르투갈은 지난해 초까지 25분기(6년 3개월) 연속 성장을 기록하며 아픈 기억을 씻어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대유행은 포르투갈의 상황을 다시 바꿔버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경제 침체가 공공 부채 위기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야당인 포르투갈 사민당의 히카르두 바프티스타 레이트 의원은 “우리가 지속적인 위기 속에 산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2020년 포르투갈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5%로, 한해 전보다 18%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 부채 증가는 포르투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주요국들이 지난해 앞다퉈 경기 부양에 돈을 쏟아부었다. 영국 분석 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10월까지 주요 20개국(G20)이 발표한 경기 부양책 규모는 11조달러(약 1경2100조원)에 달한다. 이는 일본, 독일, 프랑스의 한해 국내총생산을 합한 규모다.
이에 따라 이들 20개국의 공공 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의 140%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이 기관은 전망했다. 주요국 가운데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일본은 2020년 부채가 국내총생산의 240%를 기록할 전망이다. 미국 의회 예산처의 전망치를 보면, 2021회계연도 미 연방정부의 부채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인 국내총생산의 104.4%에 이를 걸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선진 주요 경제들이 ‘높은 부채, 낮은 성장, 낮은 물가상승률’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 경제의 침체 양상과 닮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나온다. 각국이 당장은 코로나19 억제와 경기 회복에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공 부채가 경제의 활력을 깎아먹지 않게 하는 정책도 올해 중요 과제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실시한 독일의 경우 정치권에서 이미 공공 부채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지난해 12월 초 독일 정부가 1800억유로(약 243조원) 규모의 차입 계획을 담은 2021년 예산안을 내놓자, 야당 의원들은 “미래 세대의 위기를 부르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독일 정부는 2022년부터 건전 재정 정책을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증세는 배제하고 있다. 이는 기존 지출을 줄여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뜻이어서, 또 다른 반발을 불렀다. 녹색당의 스벤크리스티안 킨들러 의원은 “코로나19 위기 이후에 거친 긴축 정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정치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많은 돈을 쏟아부을 여력이 없는 제3세계도 국가 부채의 부담을 피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외채를 들여와 투자해온 저개발 국가의 경우 경제 침체, 원자재 수출 부진, 투자 감소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지난달 저소득 국가들의 절반 정도가 이미 높은 부채에 따른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신속하게 이들 국가의 부채 재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야 충격이 세계 나머지 지역으로 번져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3세계의 외채 부담을 줄여주려는 국제 공조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주요 20개국은 지난해 10월 140억달러 규모의 부채 상환 기한을 올해 6월까지 연장해줬지만, 이것만으로는 코로나19 충격에 빠진 제3세계를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국제 개발 관련 단체들은 비판한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 등은 민간 금융 기관과 국제 투자 펀드들도 상환 유예 조처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올해 주요 경제 대국들과 국제 금융계는 제3세계를 부채 위기에서 구하는 한편, 경기 부양책의 초점을 경제 활력을 살리는 데 맞춤으로써 정부 지출 확대가 부채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고난도 과제를 안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계 기업의 수명만 연장하는 ‘좀비화’를 막을 정책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