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봉쇄 조처로 텅 빈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거리에서 한 배달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성장 대신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발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부쿠레슈티/EPA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일터와 경제 전반에 충격적인 변화를 유발하면서 근본적인 경제관 재검토를 주장하는 목소리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각국이 막대한 경기 부양책을 쓰면서 코로나19 이전 경제로 돌아가려 애쓰지만, 성장 기반의 경제관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영국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 명예교수이자 철학자인 케이트 소퍼는 최근 지적했다. ‘대안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책 <성장 이후의 생활>을 쓴 소퍼는 좀더 지속가능한 노동과 소비 관행에 근거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생각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는 “과도한 노동은 그에 따른 보상과 함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망치는 대가도 부른다”며 “노동을 줄이는 데 익숙해져야 하며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고 최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추세를 재택근무 등으로 위기를 넘고 있는 ‘지식 노동자’뿐 아니라 현장 노동이 불가피한 많은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던 주 4일 노동제의 적극 도입, 비정규직과 실업자에 대한 보호 강화, 노동 관행 개선을 위한 노사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럽의 서비스 노조인 ‘유니 유로파’ 소속 노동학자 마크 버그펠드는 조직적 변화를 강조한다. 그는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가 시급하다”며 모든 노동자가 노조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에 가장 적대적인 산업계는 환경에 대한 고려도 가장 부족하다”며 모든 노조 활동이 생태 친화적이진 않지만 더 많은 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때 ‘녹색 경제’도 촉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크 뱅크스 영국 글래스고대학 교수(문화경제학)는 “산업 전반의 노동시간 감축이 효율과 생산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는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너무 오래 일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기는커녕 후퇴하기도 한다는 게 진실”이라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노동과 소비를 줄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런 변화가 어려운 것은 변화할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이지 변화의 결과가 불확실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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