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6일(현지시각)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왼쪽)의 집을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나자프/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현지시각)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를 만나는 등 8일까지 3박 4일의 방문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교황은 5일 오후 전용기편으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무스타파 알카드히미 이라크 총리가 전용기 앞에서 교황을 맞았으며, 교황은 의장대를 사열한 후 이라크 국민의 환영을 받으며 대통령궁으로 이동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대통령궁에서 바흐람 살리흐 대통령 등 이라크 고위 관계자들과 만난 교황은 “이라크가 전쟁과 테러, 여러 종교의 평화적 공존을 거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유발한 갈등으로 고통을 겪었다”며 평화와 공존을 촉구했다. 살리흐 대통령은 교황이 “방문을 연기하라는 권유들이 많았음에도, 상처를 입은 땅인 이라크를 찾아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라크 방문 이튿날인 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에서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만났다. 두 인물의 역사적인 만남은 교황청과 이라크 쪽이 몇개월 전부터 세부 사안까지 공들여 계획한 행사다. 교황은 이맘 알리(시아파에서 인정하는 초대 지도자)의 묘지가 있는 라술 거리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린 뒤 알시스타니의 집까지 30미터 가량 걸어갔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알시스타니의 소박한 집 앞에선 전통 복장 차림의 현지 주민들이 교황을 맞았으며, 교황이 출입구에 들어설 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렸다.
약 50분간 비공개로 진행된 만남에서 교황은 이라크 내 소수파인 기독교인들을 포용해줄 것으로 촉구했고 알시스타니도 기독교도들과의 평화적 공존을 약속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알시스타니는 “이라크의 종교계는 기독교도들을 보호할 임무가 있으며 기독교도들은 다른 이라크인들과 같은 권리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 내 기독교 집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인데, 한 때는 150만명에 달했으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공격으로 지금은 3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로이터>가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으로 인정받는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우르 평원의 유적지를 방문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기독교, 이슬람, 야지디교(쿠르드족 계열의 민족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이야말로 가장 큰 신성모독”이라며 화해를 역설했다. 교황은 “아브라함의 땅이자 신앙이 태동한 이곳에서 가장 큰 신성모독은 형제·자매를 증오하는 데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임을 천명하자”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저녁 바그다드로 돌아와 성 요셉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에는 이슬람 신자인 살리흐 대통령과 외무장관, 국회의장 등도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여러 차례 이라크 방문 의사를 공개적으로 피력했으며,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이라크 방문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교황은 7일 극단주의 집단 ‘이슬람 국가’(IS)가 지배했던 이라크 2대 도시 모술을 방문해 기독교도들과 만나는 데 이어 인근 이르빌(아르빌)에서 대규모 옥외 미사를 집전할 계획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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