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연방대법원은 8일(현지시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애칭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2018년 뇌물 혐의 유죄 판결이 무효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룰라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출마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대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죄 판결로 수감됐다가 2019년 11월 풀려난 룰라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쿠리치바/AFP 연합뉴스
브라질 좌파의 상징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애칭 ‘룰라’)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 유죄’의 족쇄를 일단 벗고 정계 복귀의 길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정계가 요동치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룰라와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의 정면 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에드송 파싱 대법관은 2018년 쿠리치바 지역 연방법원이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해 내린 뇌물 사건 유죄 판결이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폴랴 지 상파울루> 등 현지 언론들이 8일 보도했다. 파싱 대법관은 “쿠리치바 법원이 룰라의 뇌물 사건을 담당할 권한이 없으며 이 사건은 수도 브라질리아의 연방법원에서 새로 다뤄야 한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예상을 뒤집은 이날 결정은 대법원의 최종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이 결정이 확정될 경우 룰라 전 대통령은 피선거권 등 모든 정치적 권리를 회복하게 된다. 미국의 싱크탱크 피터슨연구소의 모니카 드볼 선임연구원은 “대법원이 이 결정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국가의) 제도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 결정이 유지되어도 룰라가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어서, 재기소 뒤 유죄 판결을 받을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룰라의 변호사는 성명을 내어 “룰라 전 대통령은 부당하게 투옥되고, 과도하게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다”며 “이번 결정은 오랜 법정 투쟁 과정에서 우리가 옳았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법원이 이 결정을 뒤집기를 희망한다”며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 대법관은 룰라가 소속된 노동자당과 연결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룰라는 금속 노동자 출신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으며,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2014년부터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정·재계 비리 수사(이른바 ‘세차 작전’) 과정에서 2017년 기소됐다. 그는 이듬해 한 건설회사가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사업을 따내게 도와주는 대가로 아파트를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2018년 대선에도 출마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 6월 탐사 보도 매체 <인터셉트 브라질>은, 룰라 사건을 맡은 세르지우 모루 판사가 담당 검사들과 비밀리에 접촉했으며 검사들은 노동자당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서슴없이 드러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뇌물 사건이 룰라의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한 정치 공작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특히, 모루 판사가 보우소나루 대통령 취임 뒤 법무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룰라 전 대통령은 보우소나루의 재선을 저지할 유일한 인물로 평가된다. 지난주 여론조사 기관 이펙이 대선 후보 10인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룰라 전 대통령은 50%를 얻어 38%에 그친 보우소나루를 크게 앞섰다. 이 조사에서는 룰라와 보우소나루에게 절대로 투표하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각각 44%와 5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 브라질의 정치 양극화도 보여줬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