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핵실험장으로 이용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지역 무루로아 환초의 핵실험 관련 시설. 무루로아/AFP 연합뉴스
프랑스가 1966년부터 1996년까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서 실시한 핵실험의 인체 피해를 실제보다 축소해 실상을 은폐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디스클로즈>는 9일(현지시각) 기밀 해제된 프랑스 군 자료를 바탕으로 2년여동안 현지 조사와 분석을 실시한 결과, 핵실험 당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주민 12만5천여명의 90% 수준인 11만명이 피폭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런 피해 규모는 프랑스 정부에 보상을 신청한 1만명의 11배에 달한다.
이런 분석 결과는 미국 프린스턴대학 소속 과학자, 영국 환경 범죄 조사 기관 인터프르트와 함께 2천여건에 달하는 군 자료를 분석하고, 기후 자료 등을 바탕으로 낙진 확산 양상 등을 재구성해 얻은 것이라고 이 매체는 밝혔다.
조사팀은 “우리의 분석치는 2006년 프랑스 원자력에너지위원회(CEA)가 실시한 피해 규모 평가보다 2~10배 더 큰 것”이라며 “당국이 50년 가까이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사팀은 “위원회는 주민들이 강물만을 식수로 이용한다고 보고 피해를 평가했지만, 주민들은 빗물도 식수로 썼다”며 이를 포함한 몇가지 요인 때문에 피해가 더 적게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원자력에너지위원회의 보고서는 피해 보상의 근거가 되는 자료다.
프랑스 군은 1966년 7월2일 폴리네시아의 무루로아 환초에서 첫 비밀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30년 동안 193회의 핵실험을 이 지역에서 실시했다. 특히, 1974년까지는 핵폭탄을 공중에서 터뜨리는 방식으로 실험해, 타히티 섬 주민 등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고 조사팀은 지적했다. 이후엔 지하 핵실험이 도입됐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의 사하라사막에서 첫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알제리 독립 이후엔 폴리네시아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핵실험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다가 2009년부터 피해를 인정하고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
조사팀이 프랑스 군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군은 주민 피해를 막을 대책도 없이 핵실험을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1966년의 첫 실험에 앞서 군은 무루로아 환초에서 바람이 동쪽으로 불어 방사능 낙진이 바다로 떨어질 것으로 상정했지만, 실제로는 바람이 남동쪽으로 424㎞ 떨어진 강비에 제도를 향했다. 이 때문에 섬 주민 450명은 영문도 모른 채 방사능에 노출됐다. 조사팀은 “게다가 실험 3시간 전 나온 일기예보는 바람의 방향이 남동쪽으로 바뀔 것을 예상했다”며 군이 이를 알고도 실험을 강행했음을 내비쳤다.
조사팀은 핵실험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끼친 것은 1974년 7월에 실시된 41번째 핵실험이라고 지적했다. 이 실험 여파로 11만명이 프랑스 정부의 보상 기준 이상의 방사능에 노출됐다는 게 조사팀의 분석 결과다.
핵실험 당시 강비에 제도에 살던 카트린 세르다는 “섬에 함께 살던 가족 가운데 8명이 1970년대말부터 1990년대초까지 암에 걸렸다”며 “우리가 이렇게 암에 많이 걸린 이유가 뭔가”라고 반문했다.
알랭 크리스나흐트 핵실험 피해보상위원회 위원장은 “타히티 지역의 방사성 물질 피해 실태는 이미 정리되어 있고, 상당수의 피해자와도 보상에 합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제 보상을 받은 민간인은 63명에 불과하다고 조사팀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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