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경찰이 13일 경찰에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는 모임에 참석한 이들을 강제 해산해 말썽을 빚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런던에서 경찰관이 피의자인 납치·살인 사건의 항의·추모 집회를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해 논란이 되고 있다. 33살 여성 세라 에버러드는 지난 3일 저녁 런던 클래펌의 거리에서 귀가 도중 납치됐고, 10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피의자는 런던 경찰청 소속 남성 경찰관이었다. 13일 클래펌에서 에버러드의 죽음을 추모하고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는데, 경찰은 단상에 있는 이들을 끌어내리고 일부는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등 강압적으로 해산시켰다.
경찰은 코로나19 방역 등 공공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처였다고 밝혔지만,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추모 모임을 개최하려다가 막판에 취소한 여성단체 ‘리클레임 디즈 스트리츠’는 “경찰은 공공 안전, 공중 보건, 항의할 권리를 모두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은 여성들이 이 사건에 특히 분노하는 이유를 대변한다. 에버러드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간은 저녁 9시30분 무렵이었고, 납치된 장소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일찍 귀가하거나 되도록 집밖에 나가지 말라”며 사건의 책임을 여성에 전가하는 듯한 부적절한 권고를 내놨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폭력을 공유하며 ‘여성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경찰이 알아서 조심하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에드 데이비 자민당 대표도 트위터에 쓴 글에서 “크레시다 딕 런던 광역경찰청장은 수백만 런던 여성의 신뢰를 잃었다”며 여성들의 비판에 가세했다.
추모 모임은 애초 ‘리클레임 디즈 스트리츠’ 주최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지키며 모임을 열 수 있도록 협조하지 않아 취소됐다. 이 단체는 대신 에버러드가 사라진 시각인 밤 9시30분에 각자의 집에서 촛불을 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에버러드 추모 시설이 설치된 거리에 나와 헌화하는 등 온종일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밤까지 추모 인파가 줄지 않자 경찰은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