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6일 의회에서 핵무기 보유량 확대 방침 등을 담은 외교·안보 정책 보고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냉전 이후 처음으로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라는 지적과 함께 핵무기 확보 경쟁을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16일(현지시각) 발표한 외교·안보 정책 보고서에서 2020년대 중반까지 핵탄두 보유량을 180기 이하로 낮춘다는 2010년 이후 정책을 바꿔, 보유량을 260기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술적·정책적 위협 등 최근 안보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이제 핵무기 감축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잠재적 적대국의 선제공격에 취약성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핵 탑재 잠수함을 4척으로 유지하면서 적어도 한 척은 언제나 해상 정찰 상태에 있도록 운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시대의 전략적 중심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길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195기로 추산된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과 영국 정부 자료 등을 기준으로 보면, 이는 러시아(6372기), 미국(5800기), 중국(320기), 프랑스(290기)에 이은 세계 5위 규모다. 파키스탄(160기), 인도(150기), 이스라엘(90기), 북한(35기) 등도 주요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영국의 핵무기 정책 변경은, 러시아·중국 등이 최근 핵무기를 전쟁 억지력보다는 군사력 우위 확보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또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더 정교해질 경우, 한번에 더 많은 미사일을 발사해야 과거와 같은 파괴력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여지도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영국은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을 가장 잘 준수한다고 자부하던 국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핵 보유량이 가장 적다. 또 핵탄두를 잠수함에만 탑재하고 있다. 핵 감축 노력도 적극적이어서, 1970~80년대 최대 500기에 이르던 핵탄두를 200기 미만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1998년 발표했다. 또 2010년에는 핵탄두를 2020년대 중반까지 180기 미만으로 다시 줄인다는 방침을 내놨으며, 지금까지 이 방침을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핵무기 확대 방침이 핵확산금지조약(NPT) 6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고 온라인 신문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이 조약 6조는 “조약 당사국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핵무기 경쟁 중지 및 핵군비 축소를 위한 효과적 조처에 관한 교섭을 성실히 추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핵무기 확대 발표는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5년마다 한 번씩 실시하는 핵확산금지조약 점검 회의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최근 핵무기 보유국의 핵 감축 노력이 부진하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정부의 방침 변경은 핵무기 감축을 위한 그동안의 초당적 노력을 무산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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