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햄브라에서 열린 애틀랜타 총격 사건 항의 촛불시위에서 한 여성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앨햄브라/AP 연합뉴스
미국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한인 여성 4명의 사연이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현지 매체와 소셜 기부 누리집 ‘고펀드미’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에 온 개척자였고,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한국의 엄마였다.
1980년대 미국에 건너간 김순자(69)씨는 슬하에 남매를 두고, 손주 3명을 뒀다. 김씨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 2~3개의 궂은일을 동시에 하며 가족을 돌봤다. 그의 첫 직업은 텍사스 군부대에서 접시를 닦는 일이었고, 이후 편의점과 부동산 사무소 등에서 일했다. 밤에는 가욋일로 사무실 청소를 하며 돈을 벌곤 했다.
그의 손녀는 ‘고펀드미’에 올린 소개 글에서 “할머니는 우리 가족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며 “나의 할머니는 전사였다”고 썼다. 김씨의 또 다른 가족은 “그녀는 항상 가족이 최우선이었다”며 “가족들에게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고 늘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씨는 요리와 후원 등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1998년 한국 금융위기를 계기로 꾸려진 ‘글로벌어린이재단’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워싱턴 디시(DC)에서 노숙자를 돕는 활동에 참여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 가족은 말했다.
현정 그랜트씨는 4명의 한인 중 유일한 한국 국적자였다. 아들 랜디 박(23)은 최근 현지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한 싱글맘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엄마가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가 걱정돼 다툰 적도 있다”며 “엄마는 (두 아들을 위해) 이곳 미국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머니에게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는 말을 들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의 문제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와 매우 가까웠다”며 “어머니는 춤과 파티를 사랑하고,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EDM 뮤지션) 티에스토를 사랑했다. 그녀는 10대 같았다”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어머니를 회상했다.
박순정(74)씨는 이번 사건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 생활을 뉴욕에서 보냈고, 친구와 가까이 살기 위해 최근 애틀랜타로 이사 왔다. 스파 관리를 도우면서 직원들을 위해 점심과 저녁을 만들었다. 그의 사위인 스콧 리는 “어머니는 일을 즐겼다. 돈 때문이 아니라 약간의 소일거리를 원했다”며 “어머니는 매우 건강했고, 모든 사람이 100살 넘게 살 거라고 했다”고 말했다.
유영애(63)씨는 1980년대 미군 남편을 만나 한국에서 조지아로 이민 왔다. 코로나19 사태 때 실직한 뒤 한국 음식을 만들거나 영화를 보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들인 로버트 피터슨은 “엄마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그는 한 인간이었고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다른 희생자들처럼 엄마도 그런 일(총격)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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