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아프리카 베닌왕국의 문화재 반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영국 애버딘대학의 박물관장이 베닌왕국의 청동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애버딘/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의 한 박물관이 올 가을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아프리카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전시하기로 하면서, 약탈 문화재 반환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 이외 지역 전문 박물관인 ‘훔볼트 포룸’은 19세기 영국이 약탈한 뒤 유럽 각국으로 팔려나간 베닌왕국의 청동 조각 같은 문화재를 올 가을 재개장에 맞춰 전시하기로 했다고 독일 <도이체벨레> 방송이 29일 전했다. 베닌의 청동 예술품들은 현재 나이지리아 지역에 있던 베닌왕국에서 700년 가까이 이어져온 작품들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작품들이 만들어진다고 방송은 소개했다.
이 작품들이 유럽으로 본격 반출된 것은 1897년 영국이 베닌왕국을 침공하면서다. 영국은 약 3500~4000개의 문화재를 가져왔으며 이 가운데 1100개 정도는 독일에서 사들였다고 방송은 전했다. 현재 베를린에 있는 작품은 500여점이다.
영국 침공으로 베닌왕국이 무너진 직후부터도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영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문화재 반환 요구는 1960년 나이리지아가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꾸준히 제기됐다.
독일에서 반환 논의는 지난해 하이코 마스 외무부 장관이 식민주의 반성 차원에서 문화재 반환을 주장하면서 빠르게 진전됐다고 <도이체벨레>는 지적했다. 마스 장관의 문제 제기 이후 모니카 그뤼터스 문화부 장관은 베를린 박물관들을 관장하는 ‘프러시아 문화유산재단’에 이와 관련된 전략 수립을 요청했다. 베닌 예술품 전시도 이런 맥락에서 준비됐다.
헤르만 파르칭거 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최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퉁>에 기고한 글에서 “베닌 문화재를 소장한 박물관들이 나이지리아 정부 등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베닌시티에 새로 건립되는 ‘서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등에서 독일 소장품들을 전시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은 문화재들을 반환해야 한다는 게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마스 장관도 최근 트위터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정직한 접근법에는 문화 유산 반환도 포함되어야 한다”며 다시 한번 문화재 반환을 역설했다. 독일 외무부는 문화 담당 고위 외교관을 최근 나이지리아에 파견해 전시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약탈 문화재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프랑스 역사학자 베네딕테 사부아 베를린공과대학 교수는 “갑자기 ‘문화재를 돌려주겠다. 조직을 꾸리고, 토론회도 열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주 놀라운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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