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다코타주 캐링턴의 한 농민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콩을 들어 보이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도 올해 미국의 옥수수·콩 재배가 예상보다 부진할 것으로 조사돼, ‘미국발 식량위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캐링턴/로이터 연합뉴스
국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도 올해 미국 농민들의 곡물 경작 계획이 예상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에 대한 의문과 함께 ‘미국발 식량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농림부는 31일 발표한 올해 농작물 경작 계획 조사 보고서에서 옥수수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0.3% 증가한 9114만에이커(3688만㏊)로 예상됐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분석가들이 예상한 9320만에이커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콩 재배 면적도 분석가들의 예상치(8999만에이커)보다 적은 8760만에이커(3545만㏊)에 그칠 것으로 집계됐다고 농림부가 밝혔다.
두 작물은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거래되는 농산물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옥수수 수출국이며, 콩의 경우 브라질에 이은 2위 수출국이다. 이 때문에 곡물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에 따른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옥수수와 콩의 선물 가격은 이날 농림부 발표 이후 하루 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농림부가 함께 발표한 농산물 재고 현황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3월1일 기준, 미국의 콩 재고는 한해 전보다 40% 감소한 15억6400만부셸(615억t)로 집계됐다. 이는 5년 사이 최저치이다. 옥수수의 재고도 7년 만에 최저인 77억부셸(3030억t)로 나타났다.
국제 농산물 가격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지난해 봄부터 빠르게 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곡물가격지수는 지난해 6월부터 급등해 지난 2월 기준으로 한해 전보다 26.5%나 올랐다. 특히, 국제 옥수수 가격은 7년6개월 사이 최고치, 콩 가격은 6년6개월 사이 최고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 농림부의 올해 경작 계획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상품 중개 업체 ‘에이/시(A/C) 트레이딩’의 짐 걸라크 사장은 “이 정도의 콩 경작 면적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며 “어디서든 경작지를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 컨설팅 업체 ‘에이이에스’(AES)의 릴 랩 대표는 “지난 2년 동안은 날씨 여파로 경작지가 줄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며 “그래서 예상치에 크게 미달하는 경작 계획은 미스터리”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저조한 농업 생산 예상치와 관련해 주목받는 것이 치솟는 농지 가격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의 농지 가격이 지난해 6% 이상 올랐고, 최근에는 과거 최고치였던 2014년 수준에서 땅이 거래되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농지 가격 상승은 금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새로운 수익을 찾는 자본이 농지로 몰리고, 농산물 가격 상승에 힘입어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 때문에 농사지을 땅을 빌리거나 사지 못해 애를 태우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미네소타주의 농민인 조던 고블리시는 “그동안 빌려 쓰던 땅의 주인이 올해는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해서 경작지가 절반으로 줄어들 상황”이라며 “백방으로 농지를 알아보지만 현재 땅 시세로는 수지를 맞출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제3세계의 농업 상황은 더 나쁘다. 식량농업기구는 최근 내놓은 ‘재해의 영향과 농업·식량안보 위기 보고서’에서 기후 변화 등에 따른 재해가 일상화하고 코로나19 대확산 사태로 식품 공급망이 타격을 받으면서 저개발국의 식량 상황이 아주 나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18년 기준으로 지난 10년 동안 농업 관련 재해로 라틴아메리카가 입은 피해는 인구 1인당 하루 975k㎈, 곧 하루 권장 섭취량의 4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는 1인당 하루 559k㎈, 아시아는 1인당 하루 283k㎈에 해당하는 농산물이 재해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농산물 가격 상승은 저소득 국가의 기아 위험을 더욱 높일 것으로 우려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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