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영국 정부가 주문해 나온 인종 현황 보고서가 노예무역을 미화하는 권고 사항을 담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여성이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팻말을 들고,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찰관의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법원 앞에 서 있다. 미니애폴리스/AFP 연합뉴스
영국 정부 소속 위원회가 소수 인종 학생들의 학업 성적 등을 근거로 영국에 체계적 인종 차별은 없다는 보고서를 내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3월31일 보도했다.
영국 정부의 ‘인종과 민족 격차 위원회’는 이날 내놓은 소수 인종 현황 검토 보고서에서 인종보다 출신 지역, 가족 구성, 사회 계급 등이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며 영국이 인종 차별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지만 “백인이 다수인 다른 나라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이런 평가의 근거로 소수 인종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백인 학생들과 같거나 더 나은 점, 소수 인종과 백인의 임금 격차가 평균 2.3% 수준에 불과한 점, 법조계와 의료계 같은 전문직의 인종 다양성이 확대된 점 등을 꼽았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폭력으로 사망하면서 인종 차별 철폐 요구가 커지자 이 위원회를 만들어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보고서를 높이 평가하며 보고서의 24개 권고 사항을 정책 수립 때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 학계, 노동계 등에서는 보고서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버밍엄시티대학의 유명 흑인 연구자 케힌데 앤드루스 교수는 보고서가 “영국의 인종주의를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완전한 엉터리라고 평했다. 인종 평등 관련 싱크탱크인 ‘러니미드 트러스트’의 할리마 베굼 소장은 “인종 차별이 없다는 말을, 출산 도중 사망 확률이 백인보다 4배 높은 흑인 산모에게 해보라. 코로나19로 숨진 전체 의료진의 60%에 달하는 소수 인종 의료진 앞에서도 해보라”고 쏴붙였다.
일간 <가디언>은 보고서의 권고 사항 중 노예무역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며 그 내용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문화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다는 대목이 특히 말썽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의 여성과 평등 담당 ‘예비(그림자) 각료’인 마샤 드 코르도바 의원은 “어떻게 노예무역을 미화하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는지 정부는 즉각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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