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주 주지사의 부인 유미 호건 여사가 21일(현지시각) 애너폴리스의 주지사 관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그때는 때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때가 됐습니다.”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주 주지사의 부인 유미 호건(61) 여사는 21일(현지시각) 애너폴리스에 있는 주지사 관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부각되고 있는 미국 내 아시아계 혐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20대 때 미국으로 이민한 유미 여사는 2004년 호건 주지사와 결혼했다.
유미 여사는 “미국에서 아시안이 받는 차별은 어제 오늘이 아니고 오랜 이민 생활 동안 계속돼왔다”며 “너무 심각해졌고 한인 동포 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계가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메릴랜드에서 차로 10시간 이상 떨어진 미시간주에 사는 막내딸 부부가 “중간에 기름을 한 번은 넣어야 하는데 주유소에서 공격당할까봐 겁이 나서 못 온다”고 했다는 얘기 등을 사례로 전했다.
미국에 이민온 지 42년째인 유미 여사는 “그때만 해도 아이들에게 ‘누가 때리면 먼저 맞아라. 절대로 먼저 때리지 마라’고 가르쳤다”며 “하지만 이렇게 참다보면 우리 딸 다음 세대까지도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서 아시아 증오 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호건 주지사는 최근 아시아계 증오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고 한국계인 로버트 허 전 메릴랜드 연방검사장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유미 여사는 미국의 한인이 아시아계 증오에 강력하게 대항하려면 유권자 등록을 해서 정치적 힘을 키우고,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서 적극 참여해 존재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며, 퍼스트 레이디로서 그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유미 여사는 2001년 9·11 테러 당시에 무슬림이 증오 대상이 됐던 일을 언급하면서 “그게 우리한테 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차이나 바이러스’, ‘쿵 플루’라고 해서 사람들 머리에 그게 박혀 있고, 모든 걸 아시안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팬데믹이 끝나면 아시아계 혐오도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며 “그때까지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고, 그 뒤에도 그렇게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 여사는 한국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는 문제와 관련해 “제 힘으로 할 수 있다면 백신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남편과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면서도, 백신 관리는 연방정부에서 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존슨앤드존슨은 메릴랜드에 회사가 있지만 주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와 상대한다”며 백신 확보를 위해 한국 정부도 여러 군데에 접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메릴랜드주는 미 전역에 코로나19 진단키트가 부족하던 지난해 4월 한국에서 50만회분의 진단키트를 공수한 바 있다.
유미 여사는 호건 주지사의 2024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남편이 말을 많이 아낀다. 메릴랜드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그때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건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해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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