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이 담긴 주사기를 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의 신뢰성을 놓고 각 백신 제조국들 간 물밑 기 싸움이 치열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허위정보로 서구권 백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작업을 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고, 미국은 러시아 백신의 브라질 진출에 제동을 걸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문제는 이런 의혹도 상대편이 제기한 것들이어서, 정확한 사실로 보기에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대외협력청(EEAS)은 28일(현지시각) 중국과 러시아가 서구권 백신의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해 허위정보까지 퍼트리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총 13쪽 분량으로,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본격화한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러시아·중국은 관영 언론과 친정부 언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등을 두루 동원했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서구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증폭시켜 보도하거나, 음모론에 가까운 내용을 보도하는 식이다. 예컨대, 화이자 백신을 맞고 사망한 23명의 노르웨이 요양병원 환자들의 죽음을 백신 부작용과 연결시키거나, 미군의 비밀 연구 시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래했을 수 있다고 보도하는 것 등이다.
대외협력청은 “백신 외교가 마스크 외교를 완전히 대체”한 상황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제로섬 논리에 입각해” 자국 백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영국 등 서구권 제조 백신과 이들의 백신 전략에 대해 허위정보와 조작 등을 통해 깎아내리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중국의 반대편에 있는 미국도 상대방 백신 공격에 나서고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브라질 보건 당국은 지난 26일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브이(V) 백신의 승인을 거부했는데,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브라질은 ‘과학적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은 브라질이 지난 1월 임상 결과가 불투명한 중국 제약사 시노백의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한 것과 견주면 의아한 결정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미국이 1월 발간한 보건복지부(HHS)의 연례보고서에 국제문제 담당 부서(OGA)가 해야할 외교적 노력 중 하나로 “브라질이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을 거부하도록 설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지난 3월 드러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한 달 여만에 이런 ‘노력’이 현실화한 것이어서, 러시아는 미국의 ‘공작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타국 백신 승인도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자국 제약사가 개발한 백신은 서둘러 승인했지만, 영국이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승인 절차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미국은 화이자를 필두로, 모더나와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 얀센이 개발한 백신에 대해서는 매우 빠른 승인을 이어갔다. 하지만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임상 과정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 승인 절차를 미루고 있다. 영국 의약계에서는 미국이 유럽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세계적으로 사용 승인을 받은 코로나19 백신은 10여개에 이른다. 미국이 화이자 등 3개,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 1개, 러시아는 스푸트니크 V 등 2개, 중국은 시노백 등 4개에 이른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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