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근처 오스티아 해변의 한 식당에서 여행객들이 식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역내 여행 편의 등을 위해 코로나19 증명서 발급을 서두르고 있으나, 프랑스 하원은 11일(현지시각) 관련 법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스티아/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등의 자유로운 역내 여행을 위해 ‘코로나19 증명서’를 올해 여름 전에 발급하는 계획을 서두르고 있지만, 백신 비접종자 차별 논란 등으로 시행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1일(현지시각) 회원국 유럽 문제 담당 장관 회의를 연 뒤 증명서 발급 작업이 올 여름 전에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부집행위원장은 회의 뒤 “이 작업은 우리 시민들을 위한 우선 과제이며 이 때문에 여름이 오기 전에 (발급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증명서 시스템은 복잡한 작업이 얽혀 있다”며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입법화에 있어서 모두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증명서는 백신을 접종했거나 코로나19 감염증에서 회복한 사람,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발급되며, 증명서가 있으면 유럽연합 역내 이동이 쉬워진다. 디지털 형태 또는 종이로 발급되는 이 증명서에는 판독 장치를 통해 회원국 전체의 백신 접종 기록 등이 담긴 시스템과 접속할 수 있는 코드가 담길 예정이다.
집행위는 지난 10일부터 일부 회원국에서 이 시스템 기술 시험을 시작했으며, 이 시험은 2주 동안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이 증명서를 ‘디지털 녹색 증명서’로 부를 것을 제안한 반면 유럽의회는 ‘유럽연합 코로나19 증명서’로 부르자고 제안한 상태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회원국 전체의 동의와 유럽의회 통과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백신 미접종자 차별, 개인 사생활 보호 등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프랑스 의회는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제안한 ‘보건 증명서’ 발급 관련 법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하원은 이날 정부가 제출한 ‘보건 위기 출구 관리 법안’ 중 증명서 관련 내용을 담은 1조를 찬성 103표, 반대 108표로 부결시켰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야권은 증명서 발급이 아직 백신을 접종받지 못한 수많은 시민들을 차별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집권 여당과 연합하고 있는 중도 성향의 ‘민주운동’(Modem) 의원들도 증명서 발급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운동 의원들은 법안 1조가 증명서 소지자의 대형 집회 참석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참석 허용 최대 인원 등 세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드릭 오 디지털 담당 장관은 “보건 증명서가 공공 장소 개방이나 축제 등 행사 개최 시기를 앞당겨줄 것”이라며 “증명서 발급이 늦어지면 봉쇄 완화 시기는 더욱 늦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의회은 법안의 각 조문에 대해 먼저 표결하고 이어 법안 전체에 대해 표결할 수 있으며, 정부는 의회에 2차 표결을 요구할 수도 있다. 장 카스텍스 총리는 조만간 2차 표결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보건 증명서 발급 법률이 부결될 경우, 유럽연합 차원의 증명서 시행도 차질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미하엘 로트 독일 유럽 담당 장관은 “코로나19 증명서는 여행산업에 의존하는 회원국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중요하다”며 회원국들의 신속한 합의를 촉구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