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벨라루스 제재…‘항공기 강제 착륙 뒤 언론인 체포’ 규탄

벨라루스 항공사의 역내 접근 차단 결정
유럽 항공사들, 벨라루스 영공 피해 운항

폴란드에 거주하는 벨라루스인들이 24일 바르샤바에서 정부에 체포된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 석방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샤바/AFP 연합뉴스

벨라루스 정부가 자국 영공을 통과하던 외국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킨 뒤 자국 야권 인사를 체포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인 데 대해 유럽연합(EU) 등 각국이 제재에 나섰다.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은 2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임시 정상회의를 열고, 벨라루스 항공사 소속 여객기의 역내 영공 비행·공항 접근을 금지하는 제재안에 합의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회원국 정상들은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에도 합의했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역내 항공사에 대해 벨라루스 영공 비행도 피할 것을 촉구했다. 영국 정부도 자국 항공사에 대해 벨라루스 상공을 피해 비행할 것을 지시했다. 독일 루프트한자, 네덜란드 로열더치항공(KLM), 스칸디나비아항공(SAS) 등 유럽 항공사들도 벨라루스 영공을 우회해 운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벨라루스는 주변 유럽 국가들과의 항공 연결이 거의 차단될 상황에 놓였다.

라만 프로타세비치가 24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구금된 이후 모습. 민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벨라루스 정부는 전날 그리스 아테네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향하던 아일랜드 국적의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자국 수도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이어 이 여객기에 타고 있던 야권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를 체포한 뒤 여객기의 비행 재개를 허락했다.

프라타세비치는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에 개설된 ‘네흐타’ 채널의 공동 설립자다. 그는 지난해 8월 실시된 대선에서 장기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압승한 것으로 나타난 뒤 부정 선거 항의 시위에 도움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벨라루스 국영 방송은 이날 프라타세비치가 구금 상태에서 ‘대규모 사회 불안’을 조직한 것에 대해 자백하는 영상을 방영했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벨라루스 정부의 민간 항공기 강제 착륙은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 유엔 등으로부터도 비판받고 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번 사건을 “국제적인 스캔들”이라고 규탄했고, 미국 백악관도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뻔뻔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 사태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프라타세비치 구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 요구를 지지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