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3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원설을 조사하기 위해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를 방문한 가운데, 경비원들이 연구소를 지키고 있다. 우한/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의 연구소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 왜 지금 다시 고개를 드는가?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WIV·이하 우한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원했다는 주장은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제기됐으나, 근거없는 음모론으로 일단락 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기원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최근 들어 미국 정부 안팎을 중심으로 우한연구소 기원설을 근거없이 부인할 수 만도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 24일(현지시각) 보도한 미국 정보기관의 첩보 보고 이후 우한연구소 기원설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이 첩보에는 우한에서 코로나19 발발이 공식 보고되기 한달 전에 우한연구소에서 3명의 연구원이 비슷한 증세로 쓰러져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동안 연구소 기원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마저 얼마 전 코로나19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확신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도 밝혀졌다. <폭스 뉴스> 등 현지 언론은 파우치 소장이 지난 11일 팩트체크 행사인 ‘유나이티드 팩트 오브 아메리카'에서 ‘여전히 코로나19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뒤 “사실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들에 대한 결론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확인했다.
코로나19의 중국 연구소 기원설이 음모론에서 ‘하나의 가설’로 격상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첫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자연적 기원을 밝히는 작업이 아직 성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 당국의 투명성 부족이다. 이에 더해 우한연구소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집중됐다. 이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우한연구소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연관성을 너무 일찍 부인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야기했다.
특히, 코로나19 발발 초기 ‘중국이 생화학무기를 만들려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누출했다’는 음모론을 과학자들이 일축하는 과정에서, 생화학무기는 아니더라도 우한연구소가 누출 사고에 연루됐을 가능성까지 성급하게 묻어버렸다는 반성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역 실패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려는 ‘반중 음모론’이 극성을 부린 데 대한 과학계의 반발도 일부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상황이 1년이 넘게 계속되자, 과학계에서는 원점에서부터 기원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4일 전 세계의 유명 과학자들은 세계보건기구(WHO)에 공개서한을 보내, 우한연구소 기원 가능성을 부정한 이 기구의 조사에 결함이 있다며 새로운 조사를 촉구했다. 중국 쪽의 연구소에 대한 완전하고 제한없는 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지난 14일에는 저명 과학자 18명이 권위있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연구소에서의 누출 사고와 동물에서 사람으로의 감염 이론 모두가 유효하다”며 새로운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서명자 중 한 명은 그동안 우한연구소에서의 누출 가능성을 부정한 이 연구소의 시정리 박사와 협력했던 랠프 베어릭 박사다.
이런 상황에서 미 정보기관의 첩보가 보도되고, 이 내용이 미 국무부의 사실자료에 담긴 것으로 밝혀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닷새 전인 지난 1월15일 국무부는 우한연구소에 대한 ‘팩트시트’에서 “미 정부는 우한연구소의 몇몇 연구원들이 코로나19 감염 첫 사례가 보고되기 전인 2019년 가을에 코로나19 및 계절성 질환에 부합되는 증세로 질환을 앓았다는 것은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이 연구소는 가공된 바이러스를 만드는 기능획득 연구를 수행한 발간 자료들을 냈다”며 “그러나 연구소는 몇몇 광부들이 사스와 비슷한 증세로 사망한 뒤 2013년 윈난성의 동굴에서 채취한 ‘아르에이티지13’(RaTG13) 등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가장 유사한 바이러스를 연구한 기록에 대해 투명하고 일관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을 특정하지 않고 있으나, 연구소에서 기원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과학계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연구소에서 조작된 흔적은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나, (자연에서 채취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연구 중이던) 연구소에서 누출됐을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태도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