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림책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에릭 칼이 지난 2009년 <엔비시>(NBC)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를 낭독했을 때의 모습. AP 연합뉴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의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에릭 칼이 별세했다. 향년 91.
칼의 유족들은 칼이 지난 2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에 있는 작업실에서 신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 등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칼의 대표작은 1969년 출간된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The Very Hungry Caterpillar)로 애벌레 한 마리가 일주일 동안 여러 음식을 먹고 자라 나비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칼은 원래 책벌레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가 편집자 권유로 지금 처럼 바꿨다고 한다. 칼은 1994년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배고픈 애벌레>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든지 성장하고 날개를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이 7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고 세계적으로 55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전했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상원의원 같은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 운동 때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칼은 1929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로 이주한 독일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이후 6살 되던 해에 가족이 어머니의 고향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갔다. 당시 독일은 나치 치하였고 아버지는 징병 됐다가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갔다. 칼은 징병을 피했지만 15살 때 독일-프랑스 국경에 있는 요새 ‘지크프리트선’의 참호 건설 작업에 동원됐다. 1952년 미국으로 건너 간 그는 30대 후반에 들어 그림책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경험이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줬다고 생전에 말했다. 그는 생전 자신의 누리집에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아버지는 목초지를 가로질러 함께 숲 속을 걸었다. 돌을 들거나 나무껍질을 벗겨서 허둥지둥 도망가는 작은 생물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작은 생물의 생명 주기를 말해주고 조심스럽게 그 작은 생명체를 돌려보내곤 했다”고 적었다.
칼은 1999년 문학상 ‘리자이나 메달’, 2003년 아동문학상 ‘로라 잉걸스 와일더상’을 받았다. 그림책 작가 피터 레이놀즈는 트위터에 “천국의 색깔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글을 올려 칼을 추모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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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칼의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 이 책은 세계 70여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