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지시로 진행된 마약 단속 과정에서 반인도주의 범죄가 자행됐다는 혐의에 대해 정식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인권 활동가들의 인권 탄압 항의 시위 현장에 두테르테 대통령 얼굴 그림이 설치되어 있다. 마닐라/AFP 연합뉴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2016년부터 3년 동안 필리핀 정부가 벌인 ‘마약과 전쟁’에 대한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파투 벤수다 검사장은 필리핀 정부가 2016년 7월부터 마약 단속을 하면서 반인도주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해 재판부에 정식 조사 개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벤수다 검사장은 2018년 2월부터 예비 조사를 진행했으며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믿을,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사 개시 요청 120일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벤수다 검사장은 예비 조사에서 “필리핀 국가 경찰과 이들의 협조자들이 약 3년 동안 수천에서 수만명의 시민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11월 이후 제기된 필리핀 정부의 고문 등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혐의도 함께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예비 조사가 시작되자 국제형사재판소 협약 탈퇴를 선언했지만, 벤수다 검사장은 “필리핀이 협약 가입국 때 벌어졌던 일은 여전히 재판소 관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마약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2016년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경찰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경우 마약 관련 혐의자를 사살하라고 공개적으로 명령했다. 이에 따라 그해 7월 이후 20만 번의 마약 단속 작전 과정에서 숨진 사람이 공식 집계로도 6천명 이상이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실제 희생자가 이보다 몇배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적했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가 “기념비적 움직임”이라며 “정부의 이른바 ‘마약과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수천 필리핀 가정에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조약에 따라 2002년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전쟁 범죄 등에 대한 재판을 맡는 국제기관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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