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저장용량’ 블루레이 ‘싼 가격’ HD 표준채택 대결
전자·영화 기업 등 총망라 연 240억달러 시장 쟁탈전
전자·영화 기업 등 총망라 연 240억달러 시장 쟁탈전
‘차세대 디브이디(DVD)’ 표준을 놓고 기업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전자업계와 영화업계의 거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벌이는 이 승부는 가히 ‘세계대전’이라 할 만하다. 1980년대 비디오 표준을 놓고 제이브이시(JVC)의 브이에이치에스(VHS)와 소니의 베타맥스 세력이 격돌했던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싸움에서 진 소니는 비디오 시장을 통째로 빼앗겼다.
현재 차세대 디브이디 기술은 소니의 ‘블루 레이’(Blu-ray) 방식과 도시바의 ‘에이치디(HD) 디브이디’ 방식으로 나뉘어 있다. 두 회사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전자·미디어·영화 기업들을 끌어들여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긴 쪽은 연간 240억달러로 추산되는 가정용 디브이디 시장을 독차지할 수 있다.
소니의 블루 레이 진영에는 삼성을 비롯해 애플, 델, 필립스, 샤프, 파이오니아 같은 세계 전자업계의 강자들이 포진해 있다. 헐리우드의 거대 영화사인 디즈니와 21세기 폭스, 파라마운트도 이 쪽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면, 도시바의 에이치디 디브이디 진영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엔이시(NEC), 산요 같은 첨단 기술기업과 헐리우드의 강자인 유니버설이 합류해 있다. 헐리우드의 또다른 거인인 워너브라더스는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
블루 레이 진영이 앞세우는 무기는 ‘방대한 저장용량’이다. 블루 레이는 기존 디브이디가 적색 레이저를 사용해 데이터를 읽고 쓰는 것과 달리, 청색 레이저를 쓴다. 청색 레이저는 파장이 짧아 더 많은 저장용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루 레이란 이름도 여기서 왔다. 더욱이 디스크 표면에 두 개의 기록층을 만드는 ‘듀얼 레이어’ 방식이어서 50GB(기가바이트)까지 데이터를 담을 수 있다. 기존 디브이디보다 10배나 저장용량이 크다. 다만 가격이 비싸다는 게 흠으로 지적된다. 지난주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제품은 1000달러라는 가격표를 달았다. 3개월 앞서 출시된 에이치디 디브이디 제품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
이에 맞서 에이치디 디브이디는 ‘저렴한 가격’을 강조한다. 기존 디브이디 생산설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 쪽은 이런 장점을 활용해 제품도 소니 진영보다 빨리 내놓고 있다. 낮은 가격과 한발 빠른 제품 출시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저장용량은 블루 레이에 못미친다. 역시 청색 레이저를 사용하고 듀얼 레이어 방식을 채택했지만, 저장용량은 30GB에 그친다.
현재까진 두 진영이 백중세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콘텐츠 확보라는 측면에선 블루 레이 진영이 다소 앞서고 있지만, 기술을 제품화하는 능력에선 에이치디 디브이디 진영에 조금 뒤진다는 평이 다수다. 두 진영의 승부는 조만간 게임기 시장에서 우열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블루 레이 진영은 오는 11월 선보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에이치디 디브이디 진영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360을 밀고 있다.
차세대 디브이디는 3D 수준의 화질과 음향을 구현한다. ‘프로그램 뛰어넘기’ 기능이 있어 영화를 보다 맨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보고 싶은 부분만 찾아 볼 수 있다. 첨단 복제 방지 기능을 적용해 불법복제를 차단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불법복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헐리우드의 영화사들로선 반색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차세대 디브이디의 미래에 의문표를 찍는다. 시장이 기대 만큼 커지지 않고 바로 인터넷으로 흡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음질을 자랑하던 ‘슈퍼 오디오 디스크’가, 음질은 떨어지지만 편리한 엠피3(MP3)에 무릎을 꿇은 것처럼, 차세대 디브이디 역시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내려받는 방식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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