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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특파원 리포트] 오키나와 진실 손으로 가리나

등록 2007-06-24 21:45

도쿄/김도형 특파원
도쿄/김도형 특파원
일본 오키나와는 한국의 제주도와 비슷한 점이 많은 섬이다. 둘 다 감당하기 힘든 비극과 슬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슬픔과 분노의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1945년 3월26일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자, 일본군은 본토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군민공생공사의 ‘옥쇄작전’이란 이름으로 총력 저항을 하면서 오키나와 비극의 현대사는 시작됐다. 6월23일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불과 석달 사이에 18만여명의 일본인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다. 이들 가운데 절반 가량인 9만여명이 오키나와 주민들이었다.

오키나와에서는 전투가 종료된 날을 ‘오키나와 위령의 날’로 정해 당시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각종 행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올해 위령의 날을 맞이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마음은 여느때보다 더 착잡한 것같다. 이날 하루 오키나와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찼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3일 1년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오키나와 비극의 역사를 상징하는 ‘주민 집단자결 사건’의 진실이 아베 정권에 의해 철저히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미군이 맨 처음 상륙한 도카시키, 자마미 등 오키나와의 외딴 섬마을에서는 뒷산의 방공호나 자연동굴에 피신한 주민들이 일본군의 명령으로 가족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그 수는 모두 8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문부과학성은 지난 3월31일 집단자결과 관련한 고교 일본사교과서 기술에서 ‘일본군에 의한’이라는 주어를 삭제하도록 한 검정결과를 발표해 억눌린 주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문부성은 일본군이 집단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당시 집단자결이 벌어진 마을의 부대장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점 등을 삭제 지시의 이유로 내세웠다. 당시 체험자의 무수한 증언을 애써 무시한 채 문서 등의 확증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군의 강제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문부성의 논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고 강변하는 아베 총리의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만난 당시 체험자 긴조 시게아키(78) 목사는 “일본군이 미군 상륙 전에 주민들에게 수류탄 2개씩을 나눠주며 한발은 미군에게 던지고 나머지 한발로는 자결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는 살아남는 것이 두려운 이상한 상황이었다”며 ‘귀축영미’에게 포로가 되면 큰일이 날 것처럼 가르친 황민화 교육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일본 오키나와현 의회(정원 48명)는 위령의 날 하루 전인 22일 문부성의 검정결과를 철회하도록 요구하는 의견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검정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을 한 주민들은 10만명이 넘었다. 그럼에도 위령의 날 행사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검정결과에 대해 “(검정은) 교과서용 도서의 조사심의회가 학술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역사관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왜 일본의 추악한 과거사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한사코 부인하려는 것일까? 오키나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한 가미에 다치요(78)는 지난 15일 열린 평화운동단체 피스보트 주최 ‘좋아하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관을 묻는다’라는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다. 군이 주민을 지켜주지 못했고, 추악한 행위를 강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이들한테 가르치게 되면 다시 전쟁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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