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이끈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의 사진이 1면에 실린 중국 신문들이 31일 상하이의 신문 판매대에서 팔리고 있다. 상하이/AP 연합
[일본 54년만에 정권교체]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될까
공약집서 “참배 문제있다”…무단합사는 공식입장 없어
“한·일 시민단체 공동대응해 획기적 태도 변화 이끌어야”
공약집서 “참배 문제있다”…무단합사는 공식입장 없어
“한·일 시민단체 공동대응해 획기적 태도 변화 이끌어야”
“일생을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어요. 일본 정부가 벙어리, 귀머거리 노릇해 왔는데 기회가 왔으니 이젠 그러지 말라고…. 제발.”
13살 때 평양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82) 할머니는 일본의 첫 정권 교체가 이뤄진 다음날인 31일, 기대감과 탄식을 함께 내뱉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길 할머니는 “그 어린 것들을 전쟁터로 끌고가 평생 잊혀지지 않을 일을 저지르고도 일본 정부는 그동안 나몰라라 했다”며 “이제 그런 사람들이 다 바뀔테니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끝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 민주당 집권과 함께 해묵은 한-일간 과거사 쟁점들이 풀려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한-일 과거사 문제로는 △야스쿠니신사 △종군 위안부 △시베리아 억류자 미불임금 등이 주요하게 꼽힌다.
민주당은 올해 초 발표한 공약집 ‘인덱스 2009’를 통해 이들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공약집을 보면,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는 “에이(A)급 전범들이 합사돼 총리나 각료가 공식 참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평화를 위해 참배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또 위안부와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미불임금에 대해서는 국회도서관에 항구평화조사국을 설치해 진상 파악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민주당이 야당 시절 내놓았던 법안을 초심만 잃지 않고 통과시키면 사과·배상·회복이 모두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선거 승리가 기정사실로 다가오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민주당의 입장은 조금씩 후퇴했다”며 “가장 대표적인 게 위안부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민주당은 다른 야당인 사민당과 같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을 위해 ‘전시 성적 강제피해자 문제해결 촉진법’을 만들겠다”는 태도였지만, 올해 선거공약집에선 법 제정 방침이 빠졌다.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경우, 민주당은 한국 피해자 단체들이 주장해온 무단합사된 조선인 2만1천여명의 합사 취소 등에 대해선 전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1945년 징병 2기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소련군에 잡혀 시베리아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 귀국한 ‘시베리아 삭풍회’ 이병주(84) 회장은 “민주당이 얼마나 전향적인 방침을 내놓을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초 우선 일본인 피해자들에게 한 사람당 30만~200만엔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후 강제억류자특별조치법’을 제출했지만 자민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서우영 야스쿠니공동행동 사무국장은 “민주당 집권 이후 개별 사안에 대한 일본의 입장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 사안을 아우를 수 있는 총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내년이 국치 100년인 만큼 한·일 시민단체들의 공동 대응으로 민주당의 획기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길윤형 홍석재 기자 charisma@hani.co.kr
한-일 과거사 쟁점에 대한 일본 민주당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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