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은 은폐 급급
정관계는 업계와 유착
언론도 감시구실 못해
정관계는 업계와 유착
언론도 감시구실 못해
이시바시 가쓰히코 고베대 명예교수는 2000년 1월 <거대지진이 원전을 덮친다>는 제목의 논문에서 지진 재해가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겹치는 최악의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후쿠시마 원전은 대규모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있음에도 20년 전에 책정된 내진 지침에 의해 설계돼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노우라 고지 도호쿠대학 교수 등은 그 전부터 센다이 평야에 약 1000년을 주기로 초거대 지진해일이 밀려왔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왜 이런 경고들은 모두 무시됐을까?
눈앞의 이득을 중시하는 도쿄전력의 ‘은폐 체질’은 이번 사고 이전부터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1978년 후쿠시마 1원전 3호기에서 일어난 일본 최초의 임계사고는 29년 뒤인 2007년 3월에야 세상에 알려질 정도였다. 도쿄전력은 안전조처를 강화하기보다는 사고가 알려지고 원전 가동률이 떨어져 생기는 손실을 피하는 데만 열심이었다.
전력업계와 정관계의 유착도 경고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2000년 스가오카 케이라는 이름의 일본계 미국인 검사관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 균열 사고를 은폐하고 있다고 감독당국에 알렸다. 그러나 당국은 오히려 내부 고발자가 누구인지를 도쿄전력에 알려, 그가 업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원전을 감시하는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원전 산업을 추진해온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었다. 경제산업성의 고위 관리를 지내고 은퇴하면 도쿄전력의 부사장으로 옮기는 게 관행이 됐다. 전력업계는 직원들을 통해 정치헌금을 몰아주는 한편, 회사 조직을 이용해 선거에서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정치인들을 관리했다.
원전 보조금(정부 교부금과 전력회사의 부담금)에 의존하는 원전 주변 지역의 어려운 경제사정도 원전사고 경고를 흘려듣게 만든 요인으로 지적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주민들은 원전 교부금이 점차 줄어들자, 최근 도쿄전력의 7호기·8호기 증설 계획을 지지해왔다. 미야자키현 남쪽 구시마시에서는 규슈전력이 1992년부터 원전 건설을 추진하다 주민 반대로 1997년 백지화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시장 선거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한 후보가 당선돼 원전 유치론이 되살아났다. 후쿠시마 사고가 없었다면 4월10일 주민투표가 이뤄졌을 것이다.
언론도 제구실을 못했다. 일본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요미우리신문>은 사주이던 고 쇼리키 마쓰타로가 원자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원자력 개발을 적극 추진한 전력이 있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원전에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면 전력회사에서 엄청난 압력이 들어와, 언론 관계자들이 움찔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원전 반대 시위도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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