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 경영진 책임 추궁
탈원전 정관변경안 냈지만
대주주들 벽에 막혀 ‘부결’
탈원전 정관변경안 냈지만
대주주들 벽에 막혀 ‘부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28일, 회의장인 도쿄 미나토구 프린스파크타워호텔 앞엔 총회 시작 2시간을 앞둔 오전 8시부터 주주들이 길게 줄을 섰다. 250명의 경찰 기동대가 배치된 가운데, 환경단체 회원들은 ‘탈원전’을 호소하는 팻말을 들고 확성기로 구호를 외쳤다. 일부 주주들은 “원자력발전을 그만두자”는 주장을 담은 전단지를 나눠줬다.
원전 사고 뒤 처음 열린 이날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이 추진하는 원전사업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1945년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경험이 있어 원전정책에 관심을 갖고 10여년 전 도쿄전력의 주주가 됐다는 다가와 마사노리(65)는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이나 조직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이 필요하다”며 “(지진으로 세워놓은) 원전 재가동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가와시마 무쓰코(59·회사원)는 “친정 식구들이 후쿠시마현 다테시에 살고 있는데 불안하다”며 “주주들이 ‘탈원전’에 찬성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총 의장을 맡은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은 개회를 선언한 뒤 “원전 사고와 계획정전 등으로 불편과 걱정을 끼쳐드려 깊이 사과한다”며, 임원들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주주들의 참을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이 사고 수습 노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곧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여성 주주는 “정말로 책임을 느끼고 있으면 의장을 맡아선 안 된다”며 가쓰마타 의장 불신임을 요구하는 긴급동의안을 발의했다. 다른 주주는 “경영진들은 개인 재산을 모두 팔아 배상금에 보태라”고 요구했다. 가쓰마타 의장이 질문을 그만 받고 의안 심의에 들어가겠다고 밝히자 일부 주주들이 단상으로 몰려들어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날 최대의 관심사는 ‘탈원전·도쿄전력주주운동’이란 주주모임이 402명의 서명을 받아 제안한 정관변경안이었다. 1989년 제2원전 펌프 파손 사고 이후 주주총회에서 ‘탈원전’을 호소해온 주주운동은 ‘오래된 원자로부터 순차적으로 운전을 정지하고 폐로하며, 원전을 신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정관에 새로 넣자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상정된 이 의안에 대해 가쓰마타 의장은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은 채 “‘반대 다수’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가결에 필요한 3분의 2의 찬성은 얻지 못했지만, 주주들 사이에도 탈원전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은 뚜렷했다. 후쿠시마현의 미나미소마시와 시라카와시는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피난소에서 지낸다는 소액 주주 아사다 마사후미(70)는 “회사가 탈원전을 결의할 때까지 결코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말했다.
이날 주총 참석자는 9302명으로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3342명의 3배에 육박했다. 보통 3시간이면 끝나던 회의는 6시간 넘게 이어졌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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