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씨 등 ‘합사폐지 소송’ 패소
징용피해자 유족들 “항소 하겠다”
징용피해자 유족들 “항소 하겠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한국인 징용피해자를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전몰희생자로 합사한 것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참을 수 없는 한도를 넘은 일은 아니다”라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민사합의14부는 21일 김희종(86)씨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징용피해자 유족 등 한국인 10명이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합사 폐지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김씨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 군속으로 사이판에 끌려갔다가 생존해 귀국했으나 야스쿠니신사의 제신 영새부에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명부 삭제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 쪽이 명부에 생존이 확인됐다는 내용만 덧붙이고 합사 자체는 취소하지 않자 2007년 2월 일본 정부와 신사를 상대로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그동안 일본인이나 한국인 유족이 합사 취소 소송을 낸 적은 있으나, 생존자가 낸 경우는 김씨가 처음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야스쿠니신사 쪽이) 한정된 정보에 근거해 다수를 합사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과오가 생긴 것도 어쩔 수 없었다”며 “살아있는 줄 알면서 합사한 게 아니고, 생존 사실을 확인한 뒤 재빨리 사과했고, 김씨가 합사된 사실을 유족 외 제3자에게는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른 합사자의 유족이 낸 청구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종교상 행위에 의해 자신의 평온함이 침해됐을 때 불쾌해하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손해배상이나 행위 중단 등의 법적 구제로 연결하면 상대방의 종교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고 야스쿠니신사 쪽의 종교의 자유를 앞세웠다. 원고를 대리한 일본인 변호사는 이런 판결에 대해 “종교의 자유만 내세우고 일본이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이들이 내린 판결”이라며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원고들은 곧바로 항소할 뜻을 밝혔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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