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거리로 불리는 일본 도쿄 신오쿠보 거리의 한 한류상품점에 13일 오전 손님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차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도쿄 특파원이 본 ‘한류 열풍’
케이팝 인기에 한국음식·여행 관심도 높아져
한편선 독도 놓고 한·일 갈등속 ‘반한류’ 시위
“대부분 독도문제 관심없어 한류 좋아서 소비”
케이팝 인기에 한국음식·여행 관심도 높아져
한편선 독도 놓고 한·일 갈등속 ‘반한류’ 시위
“대부분 독도문제 관심없어 한류 좋아서 소비”
오는 21일 일본 도쿄에선 지난 7일에 이어 또한차례 반한류 시위가 예고돼 있다. 일본 우익작가가 쓴 <혐한류> 같은 만화가 나온 적은 있지만, 지난 2003년 <겨울연가>의 대히트로 한국 드라마가 일본 채널에서 본격적으로 방송되기 시작한 지 8년여 동안 이런 대중시위가 벌어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달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후지티브이는) 종종 한국 방송국인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한국 관련 방송이 나오면 티브이를 꺼버린다”는 내용을 올려 시위에 계기를 제공한 일본 배우 다카오카 소스케(29)는 자신의 발언이 경솔했다고 뒤늦게 사과했다. 그러나 시위대 속 휘날리던 욱일승천기가 상징하듯 우익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 ‘반한류’를 선동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 우익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과 같은 계열인 <후지티브이>가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한류 드라마를 방송할 정도의 한류붐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도쿄 신주쿠구의 이른바 ‘한류거리’에선 일본이 불경기란 사실을 거의 느끼기 어렵다. 13일 오전, 신오쿠보의 ‘한류백화점’엔 250㎡에 이르는 매장에 사람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배우 장근석의 사진을 고르던 한 40대 중반의 여성은 “(2005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본 뒤 한류 팬이 돼, 지금은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 중학생인 딸은 빅뱅을 너무 좋아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즈오카현에서 왔다는 한 여고생은 “카라는 정말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근행 한류백화점 과장은 “작년에 견줘 손님이 갑절로 늘었다”며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만 하루 1500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10대와 20대 손님이 급증해, 30대 이하가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 최고 인기상품은 표지에 연예인 사진을 싣고, 한글과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 등을 배울 수 있게 만든 ‘한글 노트’다.
방송에선 채널을 바꿔가며 거의 하루 종일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을 정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도쿄사무소의 집계를 보면, 8월1일 현재 지상파에선 <엔에이치케이>(NHK)의 <이산> 등 6개, 위성채널에선 의 <내조의 여왕> 등 29개의 프로그램이 방송중이다. 특히 <후지티브이>는 평일 오후 2~4시 시간대에 <제빵왕 김탁구> 등 2개의 드라마를 고정편성하고 있고, 위성채널에선 요일별로 5개를 방송한다. 자체 제작보다 비용은 싸고 시청률은 높아, 광고가 잘 붙는 까닭이다.
한류 연구가인 구와하타 유카는 “2003년 <겨울연가>의 대히트 이후 비슷비슷한 한국 드라마에 일본 팬들이 시들해졌는데, 2년 전부터 이른바 ‘러브 코미디’가 다시 붐을 일으켰다”고 설명한다. 그는 “<꽃보다 남자>, <미남이시네요> 같은 작품을 보면 일본인과 한국인은 확실히 웃는 포인트가 같다”고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티비에스>에서 일본판으로 리메이크한 <미남이시네요>의 주연배우 장근석은 현재 광고시장에서 일본 최고 배우 수준의 모델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류 드라마의 인기가 거의 정점이라면, 한국 가요는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강기홍 도쿄 한국문화원장은 “케이팝(한국 가요)과 함께 한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카라와 소녀시대, 빅뱅 등 한국 댄스 가수들의 인기는 한류를 일본의 10대, 20대 사이에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김용범(47) 한류발전협의회 회장(광고회사 ‘하쿠호도 캐스팅·엔터테인먼트’ 부장)은 “일본은 악기, 오디오 산업이 발달해 있고 전국에 라이브하우스가 있는 등 인프라가 좋아, 록이나 재즈에 뛰어나다”며 “우리나라는 그런 인프라가 적은 대신 1990년대부터 미국의 댄스음악을 직수입했고 잠재력 있는 가수에게 집중투자해 이 장르에선 일본에 앞서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가부키 전문 공연제작사인 쇼치쿠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을 일본에 수입해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쇼치쿠는 지난 6월 교토의 미나미좌에서 <궁>을 선보인 데 이어, 10월8일 오사카의 쇼치쿠좌에서 <미녀는 괴로워>를 초연하기로 했다. 엔화 강세로 한국여행 경비 부담이 가벼워지면서, 한국음식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식을 줄 모른다.
다카오카의 트위터 발언으로 시작된 ‘반한류’ 움직임이 이런 흐름을 가로막게 될까? 한류백화점 이 과장은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류 상품의 소비확산은 독도나 교과서 문제와는 거의 무관하게 이뤄져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이다. 구와하타도 “방송국 관계자들은 시위대가 신경쓰이겠지만, 한류 소비자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본의 보통 사람들은 독도 문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으며, 한류상품은 그저 좋아서 소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범 회장은 “시장 잠식 때문에 관련 업계에선 많은 이들이 한류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한류의 앞날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상품의 질”이라고 강조했다. <쉬리> 이후의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잇따라 흥행에 실패한 경험, <겨울연가> 이후의 드라마의 부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오히려 “일본 시장이 커지면서 요즘 한국 드라마는 캐스팅 단계부터 일본 시장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며 “이러다가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위해 만든 드라마들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일본 내 한국 드라마 편성 현황(8월1일 현재, 총 35편)
실제 도쿄 신주쿠구의 이른바 ‘한류거리’에선 일본이 불경기란 사실을 거의 느끼기 어렵다. 13일 오전, 신오쿠보의 ‘한류백화점’엔 250㎡에 이르는 매장에 사람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배우 장근석의 사진을 고르던 한 40대 중반의 여성은 “(2005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본 뒤 한류 팬이 돼, 지금은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 중학생인 딸은 빅뱅을 너무 좋아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즈오카현에서 왔다는 한 여고생은 “카라는 정말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근행 한류백화점 과장은 “작년에 견줘 손님이 갑절로 늘었다”며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만 하루 1500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10대와 20대 손님이 급증해, 30대 이하가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 최고 인기상품은 표지에 연예인 사진을 싣고, 한글과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 등을 배울 수 있게 만든 ‘한글 노트’다.
카라. JP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