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 사형연기’ 의혹에 “사형 당하는게 당연”
경시청 기동대원 “경찰서로 가라” 해프닝도
경시청 기동대원 “경찰서로 가라” 해프닝도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지난달 31일 오후 11시35분,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수염을 약간 기른 한 중년 남자가 도쿄 치요다구의 경시청 (도쿄 경찰청 본부) 정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청바지에 오리털 잠바를 입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정문 현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경찰 기동대원이 그를 가로막았다. 남자가 말했다.
“히라타입니다. 자수하러 왔습니다.”
히라타 마코토(46). 그는 옴진리교의 전 간부로 신도 가족 납치살해 혐의로 17년째 특별수배를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를 수배하는 전단이 지금도 곳곳에 붙어있다. 그러나 기동대원은 그의 자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는 경찰서나, 근처의 파출소(고방)로 가라는 것이었다.
히라타는 “저는 특별수배중인데요”라며, 정말 그래도 되는지 물었으나 기동대원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없이 700m 떨어진 마루노우치 경찰서로 찾아갔다. 11시50분께였다.
<아사히신문>이 1일 호외를 발행할 정도로 그의 자수는 일본에서 ‘빅 뉴스’였다. 기동대원은 히라타에게 경찰서로 가라고 한 이유에 대해 “히라다라는 인물이 특별수배중이란 건 알았지만, 자수하겠다고 온 사람은 머리가 갈색이고 사진과는 모습이 달라보였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히라타의 자진 출두로 지난달 16일로 마무리되는 듯했던 옴진리교 연루자 재판이 연장되게 됐다. 홋카이도 출신인 히라타는 1987년3월 삿포로 대학원을 졸업한 뒤 옴진리교에 들어가 간부들의 차를 운전하고 차를 정비하는 일을 맡았다. 사격선수 출신이고 가라테도 잘 해서 아사하라 쇼코 교주(사형 확정)의 경호를 맡기도 했다. 히라타는 1995년2월 더 많은 재산을 교단에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신도인 공증소 사무장 가리야 기요시(당시 68세)를 납치살해한 혐의 등으로 수배를 받아왔다. 그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매듭을 짓고 싶었다”고 자수 이유를 밝혔으나, 범행에 직접 가담한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히라타는 변호사에게 “교주는 사형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 그가 교주의 사형 집행을 미루게 하기 위해 출두했다는 일부의 시각을 부정했다.
옴진리교는 일본의 왕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망상을 가진 아사하라 쇼코가 만든 신흥종교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몇 차례 범죄를 저질렀다가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의 출근길 승객에게 맹독성 사린가스를 뿌려 13명을 사망하게 하고 6200명 이상 부상하게 한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동안의 재판에서 13명에게 사형, 5명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80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일본 당국은 최장 15년인 공소시효를 중단한 채 히라타 등 옴진리교 전 간부 3명을 특별수배해왔다. 히라타가 자수함에 따라, 이제 수배자는 다카하시 가쓰야(53)와 기쿠치 나오코(40) 두 사람만 남게 됐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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