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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구마모토 지진 그 후 5개월, 충격 극복하고 재기를 다짐하는 주민들

등록 2016-09-18 22:00수정 2016-09-18 22:04

지난 4월 지진 발생 직후 일본 정부 신속한 주거대책 마련
5개월 만에 가설주택에 이재민 94% 흡수
재건 비용 4분의 3 지원하는 ‘그룹 보조금’ 제도 적용
지난 12일 찾은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에는 5개월 전 지진으로 파괴된 주택들이 여전히 방치돼 있다.
지난 12일 찾은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에는 5개월 전 지진으로 파괴된 주택들이 여전히 방치돼 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무섭지는 않았나요?”

질문을 건네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기자를 앞에 두고 중학교 1학년생 지히나(13)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 모리오 히로아키(52)가 “괜찮아. 생각한 거 말해도 돼”라며 딸의 어깨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지히나는 “같은 피해를 입었던 친구들과 함께 행동할 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다”는 한 문장을 간신히 쏟아낸 뒤, “언제 여진이 올지 몰라서…(무서웠다)”라고 했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 용케 눈물은 쏟아지지 않았다.

12일 <한겨레>의 인터뷰에 응한 모리오 히로아키의 가족. 모리오의 가족은 지진이 발생한 지 4개월 만에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무라의 가설주택에 입주했다.
12일 <한겨레>의 인터뷰에 응한 모리오 히로아키의 가족. 모리오의 가족은 지진이 발생한 지 4개월 만에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무라의 가설주택에 입주했다.
지난 12일 발생한 경주 지진보다 5개월 앞서 진도 7의 연속 지진이 휩쓸고 간 구마모토의 지진 복구 작업은 얼마큼 진행됐을까. <한겨레>는 지난 12~13일 이틀 동안 지난 4월의 ‘구마모토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마시키마치와 미나미아소무라 지역을 둘러봤다. 주민들은 지진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반드시 재기하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지진으로 파괴된 주민들의 생활을 보호하고, 재기를 돕기 위한 꼼꼼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4·16일 연속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마시키마치는 겉보기엔 지진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지진 피해가 집중됐던 28번 현도 주변의 무너진 건물들은 5개월째 철거되지 않고 흉물스레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지진의 충격으로 차량 통행이 어려웠던 주변 도로는 깔끔히 정비돼 있었고, 전기·수도 등이 복구돼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주택엔 주민들이 복귀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후지오카 다쿠오 마시키마치 기획재정과장은 “무너진 건물에 대한 철거 작업은 7월초부터 시작했다. 2018년 3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16만5180채의 주택 가운데, ‘반파’ 이상(3만6831채)의 피해를 입은 집의 철거 비용은 주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처리할 예정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지진 직후 주차장을 가득 메웠던 주민들의 피난 차량이었다. 일본 정부는 지진이 발생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현내 곳곳에 가설주택을 만들어 이재민들의 주거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냈다.

지난 4월 지진으로 집과 운영하던 펜션 ‘팅크나’를 잃은 모리오는 미나미아소무라의 조요운동공원 가설단지에서 기자를 맞았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모리오는 부인과 딸 지히나와 함께 펜션 사택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가족이 진동을 느낀 것은 새벽 1시25분께였다. “이 정도면 끝나겠지” 했던 진동은 점점 크게 증폭됐고,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사방팔방으로 흔들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이들은 서둘러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 지진으로 구마모토·오이타현 등에서 무려 2.4조~4.6조엔(약 26조~50조원)의 재산피해와 1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초기의 극심한 혼란이 잦아든 뒤 일본 정부는 기민한 대응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와 구마모토현 등은 이재민이 당장 피난할 수 있는 ‘1차 피난소’, 가설주택이 만들어질 때까지 2~3개월 정도 머무를 수 있는 ‘2차 피난소’, 최대 2년간 무료로 거주할 수 있는 ‘가설주택’ 등을 차례로 마련했다.

모리오 가족도 지히나가 4월에 입학했던 미나미아소중학교 체육관(1차 피난소), 현내 숙박시설(2차 피난소) 등을 거쳐 8월말 가설주택에 입주했다. 모리오의 부인 히토미(49)는 “1차 피난소는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체육관이 피난처여서 부활동(방과후 특별활동)이나 수업 등이 있으면 어려움이 컸다. 피난 생활의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지난달 말 가설주택에 입주한 뒤에 겨우 밤에 잘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나미아소무라의 자료를 보면, 가장 먼저 완공된 촌내 가설주택 단지엔 지진 발생 이후 3개월 만인 7월7일 입주가 시작됐다. 구마모토현 전체로는 9월말이면 전체 이재민의 94%를 가설주택에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지자체들은 원래 마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마을에 살던 이들을 가급적이면 같은 단지에 배치하고 있다.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무라의 조요운동공원 가설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무라의 조요운동공원 가설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주민들의 생활 재건이다. 1억엔을 투자해 2008년부터 영업해온 펜션이 망가졌지만 모리오는 절망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일본 정부가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3·11 동일본 대지진 때 마련된 ‘그룹 보조금’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복수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지역 주민들이 ‘그룹’을 만들어 사업의 재건 계획을 제출하면 국가와 지자체가 심사를 통해 복구비용의 최대 4분의 3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다.

12일 마시키마치에서 무너진 건물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일본 정부는 ‘반파’ 이상으로 확인된 건물은 주민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정부 예산으로 철거할 예정이다.
12일 마시키마치에서 무너진 건물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 일본 정부는 ‘반파’ 이상으로 확인된 건물은 주민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정부 예산으로 철거할 예정이다.
모리오는 “지진 직후 지금까진 수입이 없었지만, 앞으론 직업을 찾으면서 펜션 복구 계획을 짜겠다. 단골들이 응원의 메일을 보내주고 있어 꼭 다시 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으로 끊어진 아소대교 앞에서 소고기 구이집을 운영하던 마스다 가즈마사(41)도 “불편한 것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룹 보조금 제도를 통해 뭘 할 수 있을지 지인들과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단계별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 욕구를 파악해 이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었다. 대형 재해가 발생했을 때 허둥대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미나미아소무라·마시키마치(구마모토)/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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