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지난 16일 문 대통령에게 전화회담을 했을 때 다음달 27일 남북정상회담 전 방일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복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서 4일 보도했다.
통신은 아베 총리의 방일 요청 배경에는 북한이 저지른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때 한국과 미국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다뤄줄 것을 요청해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만큼 답방 형식으로 문 대통령의 방일을 요청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그러나 통신은 “아베 총리의 요청에 문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다“며 “남북정상회담 준비 관계로 문 대통령의 일정 조정이 쉽지 않아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의와 늦어도 5월말에는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문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아베 총리의 문 대통령 방일 요청은 일본이 한반도 대화 분위기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담이 5월에 개최되면 이때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아베 총리는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다. 통신은 “남북 정상회담 전 정상간에서 시간을 들여서 협의해, 한-일 간 인식 차이를 메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먼저 일본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일본의 이런 태도는 아베 총리가 납치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전방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국내정치적 카드 성격이 강해 보인다. 일본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인 지금이야 말로 납치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는 호소하고 있다. 납치 문제 해결을 정권 최대의 과제로 꼽아온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베 정부는 한반도 대화 분위기 진전으로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입지가 좁아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도 국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5월초 일본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에 관해서는 “외교라인을 통해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일본의 문 대통령 방일 초청 보도는 부인했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달 16일 두 정상의 통화 직후에 한 브리핑에는 “두 정상은 한?일 간의 셔틀외교가 두 나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조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수 있도록 실무진 차원에서 날짜를 조정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당시는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이 방북 결과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미-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룬 직후 시점이어서, 아베 총리가 인사치레로라도 문 대통령을 초청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날 문 대통령 방일 초청 보도를 부인한 이유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굳이 일본의 공간을 넓혀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 패싱’을 우려해 몸이 달아있는 아베 총리의 요구에 응했다가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논의라는 의제가 흐릿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아울러,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방문 당시 아베 총리가 올림픽 이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를 주장하고 문 대통령이 이에 “우리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두 정상의 견해차가 큰 데다 감정적 앙금도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집중을 이유로 방일 초청엔 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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