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피해자) 본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이 여기자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했다는 폭로가 나온 가운데, 아소 다로 재무상 겸 부총리가 17일 피해자 자신이 이름을 밝히고 신고하지 않으면 조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성희롱 자체도 문제이지만, 일본 정부의 대응이 2차 피해를 부른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12일 주간지 <슈칸신초>의 폭로로 알려졌다. 후쿠다 준이치 재무성 사무차관이 식사 자리에서 여기자들에게 “키스해도 되냐”, “안아봐도 되냐”며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해왔다는 보도였다. 사무차관은 직업공무원 중 가장 고위직에 해당하며, 재무성은 최근 모리토모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공문서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부처다. <슈칸신초>는 후쿠다 차관이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에 대해 여기자가 질문하자 “가슴을 만져봐도 되냐”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후쿠다 사무차관과 피해자들의 대화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녹음 파일도 공개했다.
후쿠다 차관은 입장문을 통해 성희롱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업무 뒤 여성이 접객을 하는 가게에서 여성과 언어유희적인 것을 즐긴 적은 있다”면서도 “여기자와 성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재무성은 후쿠다 차관이 부인하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각 언론사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재무성이 지정한 변호사 사무실이 조사할 테니 협조해달라는 내용으로, 사실상 피해자가 먼저 이름을 밝히고 신고하라는 것이다. 아소 부총리는 “성희롱 폭로를 당한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지 않냐”며 “후쿠다 차관의 인권은 없는 것이냐”고도 말했다.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피해자가) 이름을 밝히라는 재무성의 강압적 태도는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말하는 것이다. 사건 전모를 밝히는 게 중요하지만, 재무성의 대응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노다 세이코 총무상은 “성폭력 피해자는 가족에게도 상담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대응에)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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