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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1 16:21 수정 : 2019.04.01 21:09

1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새 연호 발표 뉴스가 전광판에 뜨자 스마트폰을 들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시민들은 거리 생중계 시청, 신문들은 호외 발행
사상 처음 중국 고전 대신 일본 고전이 출전
아베 “사람들 마음 모으는 중에 문화 자란다 의미”
“유구한 역사와 문화 이을 것” 전통 강조
나루히토, 아버지 양위로 5월1일 일왕 등극

1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새 연호 발표 뉴스가 전광판에 뜨자 스마트폰을 들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1일 오전 11시40분, 도쿄의 제일 번화가인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대각선 횡단보도) 부근에 인파가 그득했다. 대형 전광판에 새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다는 뉴스가 나오자 너나없이 스마트폰으로 전광판을 찍었다. 오사카의 번화가 도톤보리에서도 시민들이 전광판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쿄의 관문인 하네다공항 출국장에서도 텔레비전 앞에 모인 이들이 “대단해”라는 탄식과 함께 박수를 쳤다. 일본 신문들은 도쿄 중심가에 호외를 뿌렸다.

나루히토(59) 왕세자의 5월1일 즉위를 앞두고 30년간 이어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마감하는 일본이 단 두 글자의 일왕 연호 발표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종일 새 연호 발표 소식과 함께, 아들에게 양위하는 아키히토(86) 일왕과 나루히토 왕세자의 일대기를 방영했다.

일본 사회의 환호는 여전히 ‘상징 천황’의 신민임을 자부하는 분위기에, 공문서 등에 연호를 함께 쓰는 일본인들의 시간 관념이 만들어낸 것이다. 끝나가는 헤이세이 시대는 태평양전쟁 뒤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뤄낸 쇼와(昭和·히로히토 시대 연호) 말기의 역동성이 한계에 달하며 다양한 사회 문제가 겹쳐 일어난 시기였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고, 1995년 한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중국의 부상으로 일본의 위상이 내려앉았다. 일본 사회에서는 새 일왕 등극과 연호 제정을 ‘새 시대’의 출발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새 연호를 공개하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명령할 령’(令)과 ‘조화로울 화’(和) 두 글자를 7~8세기에 만들어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의 매화 관련 노래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은 <서경>과 <시경> 등 중국 고전에서 연호 글자를 따왔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신조 총리가 새 연호 출전은 “일본 고전도 포함해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의 국수주의적 가치관이 반영된 선택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는 정오에 내놓은 담화에서 전통과 문화를 강조했다. 그는 “‘레이와’는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어 모으는 중에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유구한 역사와 향기롭고 높은 문화,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 이런 일본을 착실히 다음 세대에 이어줄 것이다. 혹독한 추위 뒤 봄이 오는 것을 알리며 멋지게 피어나는 매화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저마다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는 일본이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일본 도쿄에서 소년이 새 연호 발표 소식이 담긴 신문 호외를 들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레이와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평화를 명한다’는 뜻이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그동안 연호에 ‘조화로울 화’는 19번 사용됐지만 ‘명령할 령’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전 두 연호인 쇼와의 ‘평화를 밝히다’와 헤이세이의 ‘평화를 이룬다’와 비교할 때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는 집권 뒤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워 안보법제를 제·개정하고 미-일 동맹을 강화해 글로벌 동맹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헌법에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개헌을 추진 중이다.

어린 시절 전쟁을 체험한 아키히토 일왕은 정치 개입 금지라는 헌법상 제약 속에서도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헌법의 소중함을 강조해왔다. 이에 견줘 나루히토 왕세자는 정치적 발언을 한 예가 거의 없다. 다만 2015년 종전 70돌 때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을 들려달라는 질문에 “전쟁의 기억이 옅어지려 하는 요즘,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전쟁을 체험한 세대로부터 이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수정주적 역사관을 담은 ‘아베 담화’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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