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4 14:03
수정 : 2019.04.14 20:43
<교도통신> 일본 총리관저 관계자 인용 보도
6월 말 오사카에서 “한0일 정상회담 안 여는 쪽으로”
지난 세계무역기구 소송 사실상 패소 충격 분풀이에
‘대일관계 방치한다’ 비판받는 정부에게 양보 얻어내려는 듯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와 그 주변 지역에서 나온 수산물 수입금지 조처를 철회하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에서 ‘사실상’ 패한 뒤, 6월 말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보를 자국 언론에 흘렸다.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전가해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 등 산적한 양국 현안에서 양보를 끌어내려는 노림수로 풀이된다.
<교도통신>은 14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아베 총리가 6월(28~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미루는 쪽으로 검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일본 총리관저의 한 소식통은 그 이유로 “강제동원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청구 문제 등을 놓고 볼 때 ‘문 대통령에게서 얼어 붙은 일한관계 개선을 위한 의사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통신은 일본이 미국·중국·러시아 등과는 양자 회담을 여는 쪽으로 조정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그동안 한-일이 △독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 등으로 갈등할 때마다 한국을 “국제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 깎아 내리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해 왔다. 일본이 국제무대에선 ‘비상식적’인 한국의 주장을 얼마든지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양국이 자존심을 걸고 임한 이번 분쟁해결 절차에서 사실상 패소하자 헤아리기 힘든 충격을 받는 모습이다. 이 결정이 나온 직후인 12일 새벽 고노 다로 외무상은 긴급 담화를 통해 “참으로 유감”이라고 말했고, 오후 3시 기자회견에선 지난해 ”750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식 식사를 즐겼다. 그런 가운데 의미 없는 수입 규제를 이어가는 것은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에 “조기에 수입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일본이 패소한 것은 아니다”며 동요를 최소화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이런 가운데 정상회담과 관련된 ‘민감 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은 한국에 결연한 자세를 보여 국내 보수 여론을 다지고, ‘한일관계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압박해 양보를 얻어내려는 꼼수로 보인다. 앞서, 조현 외교부 차관은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한-일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며 이번 G20 정상회의를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자는 뜻을 밝혔다. 한국이 유화적 태도를 보이자,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한국에게 회담을 하려면 주요 현안에서 양보를 하라며 태도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속셈을 보여주듯 통신은 “한국이 일본을 대하는 자세를 유연하게 하거나 북한 문제 등의 정세 변화가 생기면 문 대통령과 회담할 가능성도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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