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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9 16:43 수정 : 2019.08.29 19:52

지난 23일 저녁 일본 도쿄에서 논픽션 작가인 가토 나오키가 <한겨레>와 만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논픽션 작가 가토 나오키 <한겨레> 인터뷰

“2000년 ‘삼국인’ 발언 이시하라 지사도
학살 자체 부정하겠다는 발상은 없었어
어두운 역사는 없었던 것처럼 하자는 분위기”

지난 23일 저녁 일본 도쿄에서 논픽션 작가인 가토 나오키가 <한겨레>와 만나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전 도지사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겠다는 발상은 못 했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는 우익도 학살을 부정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부른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을 쓴 논픽션 작가 가토 나오키는 최근 <트릭>(속임수)이라는 새 책을 펴냈다. <트릭>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폭동이 실제로 있었다’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을 논파하는 책이다. 1923년 9월1일 일어난 간토대지진 이후 며칠 동안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이 돌았고, 평범한 일본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 등을 학살했다. 군 일부도 학살에 가세했다. 조선인 학살 피해자는 수천명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가토가 이런 책을 쓸 필요는 없었다. 23일 도쿄에서 만난 가토는 “역사 수정주의가 1990년대부터 일본 주류가 되면서 일본의 어두운 역사는 없었던 것처럼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치에 맞지 않아도 큰소리로 이야기하면 통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가토는 <트릭>을 내기 전에 이미 ‘조선인 학살 부정론’을 논박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책이 갖는 힘이 있다. 누리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실제 학살 부정론은 현실 정치에까지 침투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3년 연속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리는 조선인 학살 추도 행사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이케 지사는 추도문 송부를 거부하면서 “도쿄에서 일어난 큰 재해와 이후 여러 사정으로 불행히 숨진 사람을 대상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조선인을 대상으로 따로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토는 “‘여러 사정으로 숨진 사람’은 학살당한 이들밖에 없다. 그러나 고이케 지사는 죽임을 당했다는 표현조차 쓰지 않았다”며 “학살 부정론을 믿거나 (제대로 된) 설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방증 아니냐”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1일 도쿄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95주년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추도하고 있다.
가토가 <트릭>에서 언급한 학살 부정론의 ‘트릭’은 정교하지 않다. 간토대지진 직후 일부 일본 신문들은 조선인 폭동이 일어났다는 헛소문을 그대로 기사화했는데 이를 인용하는 방식, 조선인 폭동 소문을 들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는 수기에서 앞부분만 인용하기, 정확하지 않은 숫자를 짜깁기해서 조선인 대부분은 지진으로 숨졌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가토는 2000년 이시하라 전 지사의 ‘삼국인’ 발언을 계기로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시하라 전 지사는 당시 “도쿄의 범죄가 갈수록 흉악해지는데, 전부 삼국인(일본 거주 조선인, 대만인을 차별적으로 지칭하는 단어) 때문이 아닐까.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언급하면서) 이번엔 불법으로 입국한 외국인이 소요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가토는 그때 “조선인 학살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이시하라도 추도문을 안 보낼 이유를 못 찾았다”고 한다.

가토는 “큰 재해가 발생하면 소수자를 범죄자로 모는 선동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발생한다. 중요한 점은 정부와 사회가 이런 움직임을 막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글·사진 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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